“융통성과 편법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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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과 편법의 차이”
  • 박평선(성균관대학교 유교철학 박사)
  • 승인 2024.05.2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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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과 융통성의 차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때때로 편법을 융통성으로 착각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편법은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기존의 틀을 깨트리는 행위이고, 융통성은 공적인 이익을 위하여 기존의 악습을 타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편법은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하고, 고집 불통한 방법을 말하고, 융통성은 변화에 능동적이고, 올바른 것을 고집하는 ‘택선(擇善)’을 말한다. 

국립어학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와 같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는데, 편법이란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은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융통성이라는 단어는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 또는 일의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하는 재주”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편법은 뭔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절차와 방법을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융통성은 상황에 따라 보다 선한 방향으로 일이 잘 되어 가도록 선택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편법과 융통성을 현실에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어떤 때는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규칙만을 고집하는 것이 편법이나 융통성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이와 반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편법이나 융통성이 되기도 한다. 

대체로 편법과 융통성을 구분하기 어려운 하는 사람들은 규정을 고집하기 쉽다. 그런데 오로지 규정대로만 하려고 하면 상황을 답답하게 할 수 있다. 만약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규정대로만 업무처리를 하게 되면 다양한 민원 사례를 해결하기 어렵다. 규정은 하나의 지침이고 표준이지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치 로봇처럼 규정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융통성을 부리지 못하고 오히려 편법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고속도로에는 차량의 흐름을 위해서 추월 차선이라는 융통성을 만들어 놓았다. 주행차선을 달리는 차량이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추월 차선을 만들어서 차량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추월 차선에서 규정 속도를 고집하는 운전자가 있다면 이는 융통성 없는 운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다른 차량이 추월을 할 수 있도록 차선을 변경해주는 것이 융통성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고려말에 맹사성은 이성계를 도와 개국 공신이 된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이미 고려의 멸망을 예견하고, 자신은 고려를 위해 죽지만 너는 살아서 새 시대를 열어가라고 말한다. 결국 맹사성은 명재상으로 조선조에 기리남는 위인이 되었다. 아버지와 맹사성은 가는 길이 달랐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맹사성 고택에 가면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렇게 정반대의 경우처럼 보이지만 편법과 융통성의 차이는 보여지는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그 정신의 문제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에 일제강점기에 이완용은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한다. 그는 스스로 현실에 잘 적응하는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바로 편법이다. 결국 그의 행위는 독립과 함께 천추에 씻을 수 없는 매국노로 남게 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거창한 역사적인 사실 이외에도 현실에서 순간순간 편법과 융통성이라는 상황에 마주할 때가 많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편법과 융통성의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편법대출 사건, 부정 청탁 사건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러한 경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사자들 간에 편법을 융통이라고 착각한 데서 벌어진 일이다. 

한때 국가 보조금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시민단체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단속을 한 적이 있다. 그로 인해 편법을 부린 많은 단체들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편법으로 유용한 경우도 있지만 융통성을 편법으로 보고 단속한 사례도 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이 둘을 구분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 조조를 놓아준 관우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소설 장발장이 더 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편법은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융통성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융통성을 편법으로 보아서도 안 되고, 편법을 융통성이라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상황을 유교철학에서는 “시중(時中)”사상이라고 한다. 때에 알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의미인데, 이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살려주는 것과도 통한다. 서경(書經)이라는 책에는 호생지덕(好生之德)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살려주는 것을 좋아하는 덕’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가 편법을 융통성으로 착각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고, 변화할 것은 변화하는 융통성과 잘 구분해서 호생지덕(好生之德)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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