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浪漫)’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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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浪漫)’에 대하여
  • 최재철 (거현산방 한일문화도서관)
  • 승인 2025.07.24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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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 바다가 그리운 계절이다. 낭만은 바다와 관계가 깊다.

'낭만'이라는 말의 유래는 무엇일까. 이 건조한 산문의 시대에도 낭만(로망)은 있는가.

'낭만', 'roman(로만)'이라는 서양어의 번역어다.

  최백호는 이렇게 노래한다.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30년전에 유행한 노래로, 특히 중년 남성들의 심금을 울린 곡이다. 어쩌다가 라디오나 티비에서 이 곡이 흐르면 가수의 독특하고 허스키한 음색에 그 시절을 떠올리며 회고의 정에 잠기는 세대가 있으리라. '' '항구' '첫사랑'이나 '실연의 달콤함' '청춘의 미련' 등의 가사에서 '낭만'을 연상할 수 있다.

'낭만(浪漫)' 이란 글자와 '파도파랑(波浪)' '()'은 떼어놓을 수 없다.

'파도(물결)의 일렁임', 그것이 바로 '낭만'이다! 파란 하늘 아래 흰 물보라를 튕기며 먼 바다에서부터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의 꿈틀대는 일렁임, 거기 몸을 맡기는 서핑, 백사장 끄트머리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적시며 뛰어 노는 맨발의 연인들과 아이들, 가슴이 울렁대며 만면에 웃음보가 터지는 순간이다.

   'roman(로망/로만)'이라는 말은 아마도 19세기 후반, 동아시아에 상륙했을 것이다. 중국 고전 한시에는 이와 유사하면서도 좀 다른 어휘 '만랑(漫浪)'이나 ()’이 쓰인 예가 있고, 당송8대가 중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7언절구 맹진과 더불어 상주 절을 유람하다(與孟震同游常州僧舍)(1085)'浪漫游(낭만유)'라는 말이 보인다.

근대에 들어서 일본의 계몽지식인 작가 모리 오가이(森鷗外)소설론(1889)에서 로만’ ‘로만스’ ‘로맨틱(파 소설)’ 등의 단어를 외래어로 가타카나 표기하여 썼다.

‘roman’을 일본음 외래어 표기 글자인 가타카나로 'ローマン(-)', 다시 히라가나에 한자로 'ろう(;-)まん(;)', 모두 읽는 음이 다 똑같이 '로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번역할 때, 어떤 한자를 붙이느냐 이다. 이렇게 원음과 일본어 음도 같으면서 원래 뜻도 살린 浪漫이라는 근대적 한자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태풍(野分)』(1907)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 속에 스콧(W. Scott)파인 浪漫派(낭만파)’라는 어구가 들어 있다.

그야말로 명역 근대의 한자 어휘가 120년 전쯤에 새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 문예사조상 '로만(낭만)주의'가 등장한 것은 19세기말이다. ‘浪漫이라는 말은 근대화 과정에서 한자 번역어를 도입한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원어나 일어 한자 모두 로만(roman=浪漫)’인데, 한글로는 그냥 '낭만'으로 읽음으로써 본래의 음 '로만'(로망, 로맨스)을 살려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는 '도이츠(獨逸;ドイツ・Deutch;도이치)'를 한자 그대로 한글로는 '독일'로 읽고 표기하여, 원래 '도이치'()를 살려서 표기하지 못한 것과 같다. 서양문예사조사에서 고전주의이후의 '로만주의‘(로맨티시즘) 라고 쓰는 책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제 와서 굳어진 낱말 '낭만''로만'으로 굳이 돌이킬 이유도 없을 듯하다.

'고대 역사의 로망' '실크로드의 대로망' 등 유구한 세월이나 대자연에서 오는 웅대한 멋, 지극하고 그윽한 사랑이라든지, 한 시대를 이끈 위인 영웅들의 모험꿈을 로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자연과 여행, 연애에서 곧잘 '낭만적(浪漫的; 로맨틱)' 기분을 느끼며 로맨티스트가 된다. 전에는 대학(젊음)의 낭만이나 낭만을 구가하다’ ‘남자의 로망등등의 말도 종종 쓰였다. 로망이 없는 시대, 낭만이 사라져가는 현대 사회에서 낭만을 도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시 외교(漢詩外交)’라는 말이 있듯이 지도자들이 평소 시구도 인용하며, 한 시대를 이끌 로망을 가져야 한다. 유능한 위정자는 분주한 가운데서도 여유롭게 백성이 내일의 꿈을 꿀 수 있게끔 하면 좋다. 예컨대, 남북한 평화통일을 이뤄 서로 잘 살고자하는 염원, 우선 부산이나 목포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는 원대한 이상 실현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대한국인(大韓國人)의 로망이다.

낭만은 추구하는 자의 것이다. 일상 주변에서 함께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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