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우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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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우는 마을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8.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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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에서 못자리를 만들어 벼를 심어놓고 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온 논이 개구리 울음소리로 채워진다. 개구리는 낮에도 울긴 하지만 밤에는 아예 떼지어 지어 운다. 특히 벼논에 물대주려고 내리는 밤비 속에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렇게나 정겨울 수가 없다. 이처럼 개구리는 우리네 생활과 가장 친숙한 존재다. 스페인어에 개구리를 뜻하는 단어가 “라나”(rana)인데 이에는 ‘빨래하는 여자’라는 의미도 있다.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흡사 개구리의 모습과 같고 그들이 나누는 세상사 이야기들이 개구리가 모여서 울어대는 모습과 같아서 그런 뜻이 생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개구리’ 하고 말하면 올챙이와 놀던 어린 시절, 그리고 개울가에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빨래하던 그런 모습들이 연상되어 노치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언젠가 김포신도시에 가서 며칠 보낸 적이 있다. 빼곡히 아파트로 채워져 있는 그곳도 서울과 별 다르지 않았지만 사방이 툭 터진 것이 한결 여유롭고 시골냄새마저 났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온통 개구리 우는 마을로 바뀌어 고향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나면서 황홀하기까지 했다. 개구리 울음소리는 매일 듣는 촌로들에게는 오히려 시끄럽게만 들릴지도 모른다. 그 소리가 시끄럽다고 논에 나가서 밤새도록 긴장대로 논을 두드려서 부모님을 편히 주무시게 했다는 효자이야기도 어린 시절에 들은바 있다. 그때는 감동을 받았으나 늙어서 생각해보니 낭만을 모르는 어른들이 자식들을 부질없이 고생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나에게는 그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와 관련한 아련한 추억도 가지고 있다. 내 젊은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기만 좋아했다. 개구리 우는 ‘철원의 밤’ 기억도 그중의 하나다. 자가용이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잘아는 J사장님이 “놀러나 가자”고 하시기에 바로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자가용에 동승하여 철원으로 갔다. 조그만 시골 미장원에 이르러 그는 안에 있는 아가씨를 불러내서 나에게 소개를 시켜주셨다. 초저녁이 가까워서 언뜻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지금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둘이서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미장원 바로 옆에 벼가 심어져 있는 논 쪽으로 갔다. 논에는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울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자 가까이 있는 놈들은 울음을 딱 그치고 조용히 살피는 듯 했다. 우리는 논두렁 앞에서 논을 바라고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한동안 그렇게 선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서자 개구리들은 우리 뒤에서 더욱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그뿐이었고 나는 곧 다른 일상에 젖어버렸다. 그 후 세월은 아득하게 흘러갔다. 지금 그녀는 누구를 만나서 어느 하늘 밑에서 자식손자 낳고 살고 있는지? 아직도 그 미장원이 있을까? 그 논에서 개구리들이 여전히 울고 있을까?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멋모르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불행하게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산곡에서는 개구리가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개구리들이 우는 이유는 서로가 짝을 찾기 위해서 운다고 들었는데 계곡 산개구리들은 논개구리들처럼 울지도 않는다. 산에서 도를 닦는 도사처럼 심령적으로 서로 통해서 짝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시골에 살면서도 개구리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니 각박한 도시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 시끄러워서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있다 해도, 또 밤새 논두렁 두드리는 효자가 없어도 좋다. 시골 살면서 엉뚱한 소리한다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저 고향개구리들이 우는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이렇게 장마가 긴 요즈음 날씨에는 더욱 개구리 소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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