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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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다는 것
  • 오계자(소설가)
  • 승인 2020.05.2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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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 수도꼭지 아래 둔 세숫대야의 물에 살얼음이다. 양력 5월인데 말이다. 목련은 폈다가 그날 밤 얼어서 갈색이 되고, 앵두꽃을 얼려서 망가뜨리더니 홍매화가 소담스럽게 꽃잎을 열다가 얼어버렸다. 낮에는 봄이라고 햇살이 씨앗을 꺼내게 하고 밤에는 만물을 얼어버리게 하는 우주의 장난에 두벌일을 하는 농가가 많다. 나도 식목일을 넘겨서 쑥갓이며 아욱, 취나물 등 제법 여러 가지 씨앗을 정성껏 묻어 줬건만 움이 올라오다가 얼었다. 다시 심은 씨앗의 움이 이제 겨우 머리를 내밀며 “까꿍”한다. 매일 눈 뜨면 뒷마당부터 살핀다. 생명력 강하다는 두릅을 심었더니 다 얼었다. 꺾꽂이에서 아직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것을 달력만 믿고 3월이라고 옮겨 심은 탓이다. 지구의 변덕에 농민들의 정성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어서 점점 농사짓기도 헷갈린다. 기상청의 정보는 필수가 되었다. 농사뿐이 아니라 본디 짓는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짓는 행위에 정성을 다해 쏟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식과 정보가 필수다.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밥을 짓고 글을 짓는다는 것, 그 자체가 과학이요 정성이다. 흔히 농사는 학문이나 지식이 없어도 이뤄지는 줄 알지만 절대 아니다. 채소 하나하나 각 개체마다 성분 분석이 있어야 하고 퇴비도 식물마다 다르다. 습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등 연구를 많이 한다.
밥 짓기 또한 지식과 정성 없이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 없을 게다. 가족들은 주부들의 정성을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편 건강과 식성에 맞추고 아이들까지 챙기는 밥 짓기는 사랑의 가슴으로 낳는 것이다. 정신은 다른데 팔고 허수아비 밥 짓기를 해서 식탁에 얹으면 곧바로 식구들이 반응한다.
글짓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짓는데 아무리 긴 시간을 소요해도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건성이라면 그건 작품이 아니라 낙서다. 또한 글을 짓는 시간이 짧다고 해서 정성과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노트북을 열기 전 이미 체험하며 느낀 감정들로 플롯을 짜고 집중해서 글짓기에 빠진다면 정성 부족이라고 할 수 없다. 독일의 어느 소설가는 두 시간 만에 단편소설 한 편을 쓴다고 했다. 믿을 수 없지만 언론이 확인 없이 거짓을 발표하지는 않을 터이다. 내가 글을 짓는 습관이 좋지 않아서 가까운 동료들에게서 “어떻게 하루에 두 편을 써요? 그냥 쑥쑥 뽑아내요?” 지적을 받는 편이다. 그래서 마음자세를 바꿔 보려고 노력 중인데, 노트북을 닫아뒀다가 또 열어보면 덜 고심한 작품은 티가 난다. 밥 짓기에 뜸을 들이듯 다 써놓고도 보고 또 보며 정성을 쏟는 것을 숙성시킨다고 한다. 숙성이 잘 되어야 글맛도 좋다. 짓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건축가들이 건물을 짓는 것은 글을 짓는 것과 다르다. 글짓기는 얼마든지 지우고 다시 지을 수 있지만 건축물은 밥 짓기나 글짓기처럼 쉽게 지우고 다시 짓는 일이 아니잖은가. 또한 설계사와 건축가, 기술자가 자신의 능력만 믿고 쓱싹쓱싹 집을 지으면 두고두고 하자보수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자보수로 건축물이 완벽해진다면 무슨 걱정일까만 보수공사로 기본공사의 부실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정성이 깃들지 않는 짓기는 그 대상만 부실한 게 아니라 짓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지 못하다. 정성을 다 한 작품이 완성되면 뿌듯한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밥 짓기, 글짓기, 집짓기 등 모든 짓기에 온 정성을 다 했다면 자신이 낳은 작품에 보람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기쁨을 준다. 정성 없이 의무감으로만 지은 결과는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정성을 다해 짓는다는 것은 보람을 짓는 일이요 행복을 짓는 것이다.
짓기 중에도 불행한 짓기요, 지으면 안 되는 것이 있으니 죄짓기다. 죄를 짓는 것은 본인만의 불행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행을 준다. 죄는 죄를 낳는다는 성경 말씀이야말로 진실 중 진실이다. 우리의 조상이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고, 불교에서의 윤회는 내가 지은 모든 결과는 내 것이 된다는 것이다. 행복을 추수할 것인가 불행을 추수할 것인가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짓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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