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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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인생
  •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 승인 2015.06.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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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희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

남도 “흥타령”의 일절이다.
꽃 본 듯이 반가운 벗을 만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술이다. 인간과 술의 역사는 아마도 가마득한 태고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원시상태의 인간들 뿐 아니라 동물들 까지도 궁한 시기에 먹기 위해 과일들을 저장해 놓는 지능은 있었다. 저장 식물은 기온 상승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효가 되는데 그것을 먹어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는 것이다. 이래서 인간이 술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 설명이 그럴듯할 것 같다. 이후 술은 인간에게 빠질수 없는 기호 음식이 되었으며 반가운 손님에게 내놓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 ‘권주가’ 따라 목구멍으로 술술 잘도 넘어가는 술, 이래서 술을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한 애주가는 말했다.
예부터 술은, 특히 막걸리는 우리네 농촌에서 빠질수 없는 음식이었다. 오뉴월 보리타작, 논메기하다 중참, 상참으로 아낙네가 이고온 식사에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 벌컥벌컥 마시는 즐거움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꼬? 그리고 길다란 김치 한줄기 죽 찢어 하늘 향해 큰 입 벌려 정조준하여 입속으로 떨어뜨려 먹는 그 맛을 어찌 잊으랴. 역시 막걸리에는 김치안주가 최고이다.

나이가 드니 만날 생각나는 일이 옛날 얘기다. 친구와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는 한 주점의 2층에서 간단하게 술을 한잔씩 하고 있던 때였다. 희미한 조명아래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막걸리 사발을 앞에 놓고 왁자지껄 얘기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가까운 테이블에는 역시 몇 명의 남녀가 모여앉아 아주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옆 좌석 쪽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그중 한 아가씨는 술잔을 앞에 놓고 망설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이윽고 결심한 듯, 앞에 놓인 동동주 잔을 조용히 들더니 한손으로는 코를 잡아 쥐고 술잔과 머리를 동시에 천천히 들어 올리면서 모두 들이켰다. 그리고는 술잔을 손에 든 채 거머리를 삼킨 닭의 눈으로 뚜룩뚜룩 하면서 보고 있는 나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날 그 아가씨의 술 마시는 모습은 하도 진귀해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떠오른다.

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니 역시 낭만이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가지 않을수 없다. 돈도 별로 없는 우리들은 ‘일번지집’, ‘묵돌이집’이니 하는 간판의 집으로 들어가서 친구 몇이서 말술을 마시곤 했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자정 가까운 시간에는 희미한 조명등이 달린 전봇대를 붓들고 뒤뚱거리는 취객들이 많았다. 같이 마시던 동료와 꼬부랑 혀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를 의지하면 그래도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의 술꾼들은 자기도 취해 있는지라 제갈 길로 먼저 가버리기 일쑤였다. 술집도 일반인 상대 ‘니나노’ 집에는 아가씨들도 있었다. 그런 집에서는 밤이 늦도록 젓가락, 숟가락 장단으로 상이 부서져라 두드리며 “니나노오-” 하는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변하여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면서 술과 관련한 풍경도 많이 변했다. 더구나 노래방기계가 도입되고 난후에는 젓가락 장단의 낭만 같은 것은 아득한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생각 차이겠지만 마이크 들고 틀에 박힌 폼에 노래자랑 같은 기계적인 노래를 듣는 것은 과거 젓가락 장단에 비하면 가식과 같은 느낌이 들어 싫어진다. 더구나 스피커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여놓고 못부르는 노래실력을 귀따가운 소음으로 카버하려는 노래방은 나를 질려버리게 까지 한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건강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체질관계로 술을 전연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술을 한잔도 안먹고 술자리에서 술먹는 사람과 격없이 놀수 있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과 같은 술자리에서 어울리는 것은 외계인과 앉아있는 것 같아 찜찜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마치 눈을 말똥말똥 뜨고서 키스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과음은 건강에도 나쁠 뿐만 아니라 많은 실수를 동반함으로써 개인의 명예와 생활에 파멸을 가져 올수도 있으므로 특히 삼갈 일이다. 술에 장사 없다고 한다. 아무리 힘센 사람도 술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술에 잡아먹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장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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