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히 작은 배에 누워보려고 하네 : 三灘偶吟 / 함계 정석달
상태바
초연히 작은 배에 누워보려고 하네 : 三灘偶吟 / 함계 정석달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4.23 15: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1】
두 물이 합수하는 곳을 신조어로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한 물의 위치를 가리킨 말로 쓰인다. 큰 강이 흐르기까지는 여러 지류에서 합수하는 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 어디 두 지류뿐이겠는가. 세 곳의 물이 합수한 곳도 더러 있다. 우리는 이를 삼탄이라 부르려 한다. 세 곳의 물이 합수한 곳에서 초연히 잡된 인간사 모든 것 다 버리고 작은 배에 눕고 싶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三灘偶吟(삼탄우음) / 함계 정석달
드높은 가을 하늘 한 조각달이 뜨니
그림자 천리 강으로 저 멀리 흘러가네
초연히 인간사 버리고 작은 배에 누워보네.
秋天一片月 影入千江流
추천일편월 영입천강류
願棄人間事 超然臥小舟
원기인간사 초연와소주

초연히 작은 배에 누우려한다네(三灘偶吟)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함계(涵溪) 정석달(鄭碩達:1660∼1720)이다. 조선 후기 때 생원이 되어 현감을 지냈으며, 정언을 거쳐 사서ㆍ수찬ㆍ교리를 역임했다. 집의로서 백관들의 안일함을 논핵하여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지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명나라 군대를 위한 설단치제(設壇致祭)를 건의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을 하늘에 한 조각달이, 그림자는 천리 강으로 흘러들어가네, 원하노니 인간사 다 버리고, 초연히 작은 배에 누우려 한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세 갈래 여울을 보고 우연히 읊음]로 번역된다. 세 갈레 물이 합수되는 곳에서 마음이 흡족했던 모양이다. 그것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 강을 끼는 곳이면 어디든지 지류가 있어 물은 만나게 되고 필연적으로 바다로 향하게 되어 있다.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 있다. 가을 하늘이 맑게도 보이더니 한 조각 초승달이 둥그렇게 떠올랐다. 아마 그 달은 황진이가 읊었던 반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토끼가 반쯤 이상은 먹지나 않았을까? 여자들이 머리에 꼽는 비녀는 아니었을까? 그 맑은 가을 하늘에 천리쯤 흐르는 강줄기는 흘러간다고 음영하고 있다.
화자는 번뇌스러운 인간사를 다 버리고 초연히 이 가을 하늘을 보고 싶다고 했다. 때 묻지 않고 이 좋은 계절에 자연과 함께 살고 싶어 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화자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떨쳐버리고 초연히 살고 싶은 강한 충동감에 사로 잡혀 있었음을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秋天: 가을 하늘. 一片月: 조각달, 한 조각의 달. 影: 그림자. 入: 들어가다, 들어오다. 千江: 천리 강, 멀리 흐르는 강. 流: 흐르다. // 願: 원하노니. 棄: 버리다. 人間事: 인간사, 인간 세상. 사람이 살아가는 일. 超然: 초연히, 그러함을 넘어서. 臥: 눕다. 小舟: 작은 배. 황진이는 [小栢舟]로 했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