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서 볼락 사라고 소리 지르네 : 甫락魚(볼락어) / 담정 김려
상태바
물가에서 볼락 사라고 소리 지르네 : 甫락魚(볼락어) / 담정 김려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2.26 09: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4】
새벽이면 어촌은 수선하기 그지없다. 밤새워 잡았던 고깃배가 선창에 도착하면서 중개인들과 어부 가족이 나와 어시장을 방불케 하는 새벽이다. 한 때이지만 사람 사는 맛을 느낀다. 어부들이 애써 고기를 잡는 재미도 여기에 있는가 보다. ‘볼락어’가 지금도 동부 남해안지방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이다. 젓갈로는 일품이다. 사리 때가 되면 밀물이 불어 사립문을 두드린다는 작자의 상상력에서 많은 감동을 주고 있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달지고 까마귀 우는 바다는 고요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알겠네, 불락 배 도착한 줄 물가 사공 소리치니.
月落烏嘶海色昏 亥潮初漲打柴門
월락오시해색혼 해조초창타시문
遙知乶락商船到 巨濟沙工水際喧
요지볼락상선도 거제사공수제훤

물가에서 볼락 사라고 소리 지르네(甫?魚)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담정(潭庭) 김려(金려:1766~1821)다. 경남 진해로 유배가 있으며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지었는데 여기 수록된 볼락어가 대상이다. 우해(牛海)는 진해의 별칭으로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와 함께 귀중한 자료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달 지고 까마귀 울어대는 바다는 어둑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릴 듯하네, 볼락 파는 배 도착한 줄 멀리서도 알겠으니, 거제 사공 물가에서 볼락 사라 소리 지르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불락어 사라하네]로 의역된다. 볼락어에 대해 ‘보라어’는 모양이 호서에서 나오는 황새기(黃石魚)와 비슷한데 매우 작으며 색깔은 옅은 자색이다. 원주민들은 보락(甫락)이라고 부르거나 볼락어(乶락魚)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방언에 옅은 자색을 보라라고 하는데 보는 곱다는 뜻이니, 보라(甫羅)는 고운 비단이라는 말이다.
저물녘 바닷가 마을에 밀물이 집문 앞까지 들어올 듯이 밀려오는 모습이 펼쳐진다. 멀리서 볼락 파는 거제 뱃사공의 장사 소리가 들려오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촌의 일상적인 평화와 활기가 느껴진다. 젓갈은 맛이 약간 짜면서도 쌀엿처럼 달콤하며 접시에 담으면 깨끗하니 색깔이 매우 좋다. 싱싱할 때에 구워 먹으면 모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말을 지나치게 한자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무리수가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진해, 거제의 풍속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 어민들의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한자와 어구】
月落: 달이 지다. 烏嘶: 새가 울다. 海色昏: 바다는 어둑하다. 亥潮: 해시, 밤 9시~11시. 初漲: 밀물이 불다. 打柴門: 사립문을 두드리다. 遙知: 멀리서도 알다. 乶락: 불락어. 商船到: 상선이 도착하다. 巨濟: 거제. 沙工: 사공. 水際喧: 물가에서 소리 지르다, 곧 볼락을 사라는 소리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