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 : 雨後 / 동고 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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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 : 雨後 / 동고 최립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2.12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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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3】
가을은 쓸쓸하다. 거두는 계절이자,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늦가을 비가 한번 내리면 언제 다가왔는지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겨울손님이 덥석 손을 부여잡는다. 어쩔 수 없는 계절의 탓이겠지만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새봄을 맞이하려는 부푼 기대를 갖고서. 거센 바람이 부니 수놓았던 수풀이 절반이 비었다. 이제 서서히 온 산이 가을빛을 거두어 가고 있으니 남은 잎이나마 푸른 물이 띠워보았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雨後(우후) / 동고 최립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비단 같이 수놓은 수풀 절반 비었구나
온 산은 가을빛 거두고 푸른빛만 띄우는데.
朝來風急雨몽몽 錦繡千林一半空
조내풍급우몽몽 금수천림일반공
已作漫山秋色了 殘紅與泛碧溪中
이작만산추색료 잔홍여범벽계중

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雨後)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동고(東皐) 최립(崔:1539~1612)이다. 공주목사 재직 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4년에는 주청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형조참판을 지냈다. 시와 문에 탁월하여 한호(韓濩)의 글씨, 차천로(車天輅)의 시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려 명문을 떨쳤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거센 바람 부는 아침 부슬비 내리더니 / 수놓은 비단 같던 수풀이 절반은 비었구려 / 이미 온 산은 가을빛을 거두고서 / 남은 붉은 잎으로 푸른 물에 띄우네]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비가 온 뒤에는]으로 번역된다. 가을은 소소함을 느끼게 한다. 인생으로 치면 작가의 나이 50을 넘기고 화갑인 60에 접어드는 나이다. 늦가을엔 비애를 느낀다. 여름내 무르익었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가 하면 주렁주렁 열렸던 과일도 수확하게 된다. 한 생명을 푸르게 키워놓는가 했더니 낙엽만 말없이 떨어져 한 줌의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엄숙한 순간이 가을이다.
시인은 저물어가는 가을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 시간에 서성인다. 봄의 꽃보다 더 붉어 비단을 수놓은 듯했던 가을 단풍이 이제는 듬성듬성 쓸쓸해 보인다. 화려함을 발산했던 가을 산은 이제 수수함으로 돌아와, 아직은 맑고 푸른 시냇물에 여전히 붉디붉은 나뭇잎을 흘려보내며 내년의 봄을 기약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온 산을 수놓았던 수풀은 절반이 비었다면서 가을빛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외롭게 남아있는 붉은 잎을 푸른 물에 띄워 보내면서 싱그러운 푸르름을 더해 보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담고 있다.
【한자와 어구】
朝: 아침. 來風: 바람이 불다. 急雨: 거센 비가 내리다. ??: 비가 내리는 모양. 錦繡: 비단으로 수를 놓다. 千林: 많은 숲. 一半空: 절반은 비다. 已: 이미. 作: 짓다. 漫山: 온 산. 秋色了: 가을빛을 거두다. 殘紅: 남은 붉은 잎. 與: ~으로. 泛: 띄우다. 碧溪中: 푸른 시냇물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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