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는 일생동안 선한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상태바
“한시(漢詩)는 일생동안 선한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5.01.22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 이사람-장안면 봉비리 이종원 시조시인
한문, 한자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글, 한글이 사라지고 있다. 한자와 순우리말이 복합된 우리의 한글체계에 있어 알면 좋고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자, 한문이다. 우리 한글은 뜻 글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한자를 모르면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젊은 세대일수로 한자, 한문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고 인성교육마져 소외되고 있는 시점에 한문교육을 의무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릴 적 동네 서당에서 배운 ‘대학(大學)’이 계기가 되어 평생 한시를 쓰고 있는 이종원 시조시인을 만나 한문 교육과 시조의 매력에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 한문, 한자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영봉 이종원 시조시인.
“1950년 6.25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의 선병국 가옥, 당시 선정훈 어르신이 운영하는 서당에 아버지의 권유로 한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선병국 가옥 지금의 군부대자리에 ‘관선정’ 이라는 한학 서당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흔적은 사라졌지만 해방과 6.25 이후 지금의 선병국 가옥 사랑채에서 서당을 열어 인근 마을 20여명의 학생이 모여 글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서당을 찾는 학생 대부분은 10세부터 20세등 다양한 연령으로 1년에서 2.3년 동안 학생들이 글 공부가 이어졌습니다.
당시만해도 한자를 어느정도 배우면 면서기는 할 수 있을 정도로 문맹자가 많았던 시절이었기에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동네 서당을 찾아 쌀, 보리를 학비로 지불하면서 한문을 가르키려고 했던 부모의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14세때 선병국 가옥 사랑채에서 당시 교재로 사용했던 ‘대학(大學)’을 하루에 5~6줄 읽고 쓰면서 외우던 그 시절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서당에 가기 싫어 하루를 빠지면 머슴을 시켜 잡아다가 공부시킬 정도로 선정훈 어르신의 서당 운영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습니다. 당시 서당에 가기 싫고 배우기 싫었지만 1년 동안 힘들게 다녔던 서당교육이 지금 생각하면 평생 쓰는 한문이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후에 공직생활을 하면서 한문공부를 했던 덕분으로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자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 재미를 알아가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 한자, 한문은 알면 좋고 몰라도 그리 불편함없이 생활할 수 있지만 뜻 글자로 구성된 한글은 한자를 알면 그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종원 시조시인이 말하는 한자와 한문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 세대일수록 한자, 한문을 경시해 배우고자하는 노력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자를 우리 글자처럼 사용했습니다. 이런 한자를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통해 말과 글이 다른 기존의 한문을 보완해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배우기 힘든 한문을 보완하기 위해 편지와 일기를 한글로 쓰면서도 한자를 병행해서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는 점입니다. 한자로 시를 짓기도 했지만 훈민정음으로 시조와 가사를 지우면서 누구나 쉽게 글자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한글의 우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글이 우수성은 뜻을 품고 있는 한자를 병행하면서 한글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글이 우리 글이라면 한문을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점에서 몰라서는 안되는 우리 글자라는 점에서 꼬 배워야 할 글자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영어를 몇 살부터 가르쳐야 할까? 라는 학자들의 불필요한 논쟁이 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신라의 최치원선생은 12살 때 당나라 조기유학을 떠나 중국의 글자인 한문을 익혀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하여 최고의 문장가가 되었듯이 대부분의 성인군자는 어릴 적부터 교육의 열정을 쏟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한자, 한문교육이 초등학교 과정에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영봉만록' 책 사진.
인성교육의 기초가 한자와 한문이 될 수 있다는 이종원 시조시인의 주장에는 어릴 적 짧은 1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평생동안 삶의 지표가 묻어나고 있었다.

“예전 성인들이 말하기를 시를 읽고 시로서 자기의 뜻을 펼치게 되면 인생이 교화되어 착한 이는 더욱 선량해지고 악한 이는 개과천선하게 되어 모두가 흘룡한 인품의 사람들이 많아 질 수 있다는 점이 한시의 매력입니다. 저에게 한시는 평생의 교화하고 인격을 바로 세우는 학문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려시대 과거시험을 통해 그 사람의 학문과 인품을 측량했듯이 지금 한자, 한문을 소외시키고 불필요한 학문으로 치부하는 것은 자칫 인품 없는 교육만을 강요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인성없는 인간교육만을 추구하는 과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한자, 한문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는 이야기하면서 정작 한자, 한문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바뀌어야 올바른 인성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릴 적 가난한 형편에도 동네 서당을 보내면서 배움을 놓지 않도록 채직질하던 부모님의 마음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99칸 선정훈 어르신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한자와 한문은 글자이면서 인성교육을 위한 기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종원 시조시인은 조국 근대화 사업이 한창이던 1969년 보은군청 9급 공무원 채용시험으로 합격하면서 지방행정 30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전국 각지의 향교에서 열리는 한지 창작백일장에 참여해 많은 입선을 하기고 했다. 한국한시인명감에 한시 3수가 실리기도 했으며 2007년 고희를 기념해 평생 써온 한시와 시조를 엮어 ‘영봉만록(寧鳳漫錄)’을 발간했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준자 여사와 슬하에 3남2녀를 두고 있다.
/박진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