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녹음 속엔 꾀꼬리가 있다오 : 夏日 / 삼의당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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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녹음 속엔 꾀꼬리가 있다오 : 夏日 / 삼의당 김씨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5.01.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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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30】
자연을 아끼는 것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다. 새들이 깃을 털고 편히 쉴 수 있는 새집을 만들어 주는 일, 산란기가 되면 행여 새가 새끼를 치는데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남아선호사상의 봉건주의 사회에서 석류는 다산과 아들을 상징했다. 석류의 꽃 봉우리, 열매, 씨앗, 석류화 등은 다 관련이 깊다. 석류가 붉어지는 계절에 꾀꼬리가 쉬고 있으니 조심해야 된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夏日(하일) / 삼의당 김씨
창밖엔 날이 길고 향기로운 바람 분데
석류화 어찌하여 하나씩 붉게 필까
와석(瓦石)을 던지지 말게, 꾀꼬리 놀라겠네.
日長窓外有薰風 安石榴花個個紅
일장창외유훈풍 안석류화개개홍
莫向門前投瓦石 黃鳥只在綠陰中
막향문전투와석 황조지재녹음중

지금 녹음 속엔 꾀꼬리가 있다오(夏日)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삼의당 김씨(金三宜堂 金氏:1769~1823)로 여류시인이다. 탁영 김일손의 후손인 김인혁의 딸이며, 담락당 하립(河笠)의 부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재예에 뛰어나 여공의 틈틈이 책을 놓는 일이 없어 일찍이 중국의 시문집을 비롯하여 경서며 사기류를 섭렵하였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날은 길고 창밖엔 향기로운 바람이 부네 / 어찌하여 석류화는 하나씩 붉게 피는가 /문 앞의 기와와 돌조각을 던지지 마소 / 지금 녹음 속엔 꾀꼬리가 있다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어느 여름 날]로 번역해 본다. 삼의당과 하립은 남원 출신인데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집안은 존경받는 학자 집안이었으나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데다가, 남편이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자 서른 살이 넘어서 낙향하였다. 부부는 진안에 땅을 마련하여 시문으로 화답하며 살았다.
시인은 평생을 유교적인 규율과 부도(婦道)를 지키며 일생을 마쳤다. 해가 긴 여름날 시인이 거처하는 시골집 작은 창으로 훈풍이 불어온다. 석류는 껍질 속에 알맹이가 많은 과일이기에 다산(多産)으로 아들 생산을 상징한다.
화자는 석류의 모양과 내용이 보석을 간직한 복주머니 같아서 사금대(沙金袋)라는 별명으로 부귀다남의 뜻함을 알고 있다. 문인화나 민화의 소재로 즐겨 다뤄지는 석류 꽃봉오리는 사내아기의 고추를, 열매는 사내아이의 음낭을, 보석같이 많은 씨앗들은 아들을 상징하기 때문에 석류 그림은 곧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한자와 어구】
日長: 날이 길다. 窓外: 창 밖. 有薰風: 향기로운 바람이 불다. 安: 어찌하여(부사로 쓰임). 石榴花: 석류화. 個個: 낱낱이. 紅: 붉다. 莫: ~하지 말라. 向門前: 문 앞을 향해. 投: 던지다. 瓦石: 기와와 돌. 黃鳥: 꾀꼬리, 누런 꾀꼬리. 只在: 있다, 다만 있다. 綠陰中: 녹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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