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 김정 참된 뜻으로 보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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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 참된 뜻으로 보존하자"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4.09.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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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판서공 2013 계사 대종보가 엇갈리어 반박의 지면이 계속된다.
시화에 진충암의 이상정치 충암 김정은 1486년 성종 17년 음력 9월 5일 정인 효정의 둘째 아들로 보은읍 성족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세 살 때부터 글을 알았고 여섯 살 때 시를 지었으며, 어린 나이에 대학과 중용을 줄줄이 외웠다. 14세 때 별시 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복시에 응시를 사양하고 과거에 문장은 족히 배울 것이 못된다면서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다. 선생은 효심 또한 지극하여 15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았다. 19세에 삼하시에 합격하고 22세에 문과에 장원급제 하였다. 1507년 중종 2년 폭군 연산군이 반정으로 쫓겨나고 새로운 가풍이 풍미하기 시작 전적에 이어 정언, 그리고 명예로운 간직으로 홍문관 교리를 거쳐 이종정량 때 선생은 견문을 넓히고자 순창군수로 나갔다. 이때 3대정치를 이상으로 삼고 그 실현을 펴보려던 선생을 좌절을 당했다. 반전공신들은 중종 왕비 신씨를 부당하게도 중종에게서 내쫓고 장경왕비 윤씨를 맞도록 하는 한편 공신들의 딸 또는 누이동생으로 후궁을 삼았다. 1515년 계비 장경왕후가 세자 뒤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선생은 후궁이 왕비자리를 넘보는 사태를 막고 국논을 조속히 확립하여 왕권을 튼튼히 하고자 후군파에 의하여 억울하게 쫓겨나고 신비를 다시 복위하여 달라는 상소문을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용감하게 올리었다. 선생에 상소가 올라오자 훈군파 중신들의 악랄한 건의라는 탄핵으로 고향으로 귀향 명령을 받았다. 선생은 곧고 의로운 이상정치에 앞장서 중종왕비 단경왕후 신씨 복위 상소문 충암 김정, 윤옥, 박상 삼인대가 결의했던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사 앞 순창삼인문화선양회가 매년 음력 7월 29일 오전 10시부터 삼인대 결의대 보존회로 열린다. 진도로 가는 도중 바닷가에 서있는 노송 밑에 쉬며 자신의 심정을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써내려갔다.

이 시는 충암 김정 선생의 마지막 시이다.

바닷바람 불어오니

솔잎의 슬픈 소리

멀리 울려가고

산 위에 달 외로이 떠오르니

솔잎 없는 가지 그림자 성글기만 하구나

곧은 뿌리 땅 속 깊이 뻗어 있으니

눈과 서리 겪은 모습 만연하구나

가지는 꺾인 채 잎은 삼사 도끼 찍힌몸을

모래 위에 눕혔도다.

기둥감이 되겠다는 소망은 끊기었는가

뻣뻣한 그대로 해상에 떠도는 신선들에 땟목이나 되어 흘러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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