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노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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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노년을 위하여
  • 김철순/ 시인
  • 승인 2014.07.1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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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고 있다. 그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올해는 매실도 많이 달리고 자두도 많이 달렸다. 매실이 너나없이 풍년이라 값이 쌌지만, 삼백 킬로그램이 넘는 매실을 따자마자 다 팔았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의 가치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두는 따서 아이들한테, 지인들한테 택배로 보내고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남는 건 자두 식초가 몸에 좋다고 하여 식초를 담아두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고추가 많이 달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리 밭엔 고추가 주렁주렁 많이도 달렸다. 약을 치지 않았는데도 아직까지 잘 자라고 있다. 밑거름을 충분히 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 EM과 액비를 가져다가 한 달에 두세 번 뿌려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며칠 전엔 단비가 내려서 들깨 모종을 하고 왔다. 팔이 조금 아프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온다.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재미에 또한 흠뻑 빠져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반항처럼 일찍 결혼을 하고 살면서 늘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 셋 키우고 빠듯한 살림에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공부를 못 하고 죽으면 후회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학이 가고 싶었다.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던가? 나는 늦은 나이에 방통고를 거쳐 특기장학생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2학년이다. 중간고사를 보고 기말고사를 보고 리포트 쓰느라 힘은 들지만, 하고 싶은 공부라 그런지 재미있다. 넉넉한 부모님 밑에서 정규 수업을 받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릴 적 꿈이었던 영어선생님이 되어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아니 지금쯤은 퇴직을 준비하는, 나이가 두려운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나이가 두렵지 않다. 글을 쓰는데 나이가 상관없으니 말이다.

동시를 쓰고 있다. 그 재미에 또한 흠뻑 빠져 있다. 시를 쓰다가 몇 년 전부터 동시를 쓰고 있다. 시를 쓸 때보다 훨씬 재미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를 생각하니 힘든 줄 모른다. 아니 동시의 소재가 무궁하게 많다. 콩을 심으며 뻐꾸기 울음도 함께 심고, “구구구 구구구” 구구단을 못 외우는 산비둘기에게 “팔십일”하고 일러준다. 사과가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비, 바람을 견디고 잘 익은 사과가 되기까지의 길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동시집을 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 블로그나 인터넷서점 리뷰에 동시가 재미있다고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으며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따듯함을 전해주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더 있을까?

농사를 짓고, 공부를 하고 동시를 쓰면서 나의 노년을 준비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30년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그 긴 노년의 시간을 무언가 보람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농사를 짓는 것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니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고, 공부를 해서 재능 기부를 하면 마음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그리고 좋은 동시를 써서 오래도록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잃어버린 자연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이만하면 나의 노년은 풍요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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