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 秋夜雨中 / 고운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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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 秋夜雨中 / 고운 최치원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 승인 2014.06.19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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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요, 가을은 사색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만리타향에 있는 사람에게 가을은 더 없이 쓸쓸했을 것은 분명하다. 868년 어느 날, 당나라로 떠나는 열두 살 최치원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10년을 공부하고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한마디에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향수에 젖은 나머지 읊조린 시를 아래와 같이 번안해 본다.

秋夜雨中(추야우중) / 고운 최치원
가을바람 괴로워서 시 한 수 읊조리니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어찌 이리 없다던가
깊은 밤 등잔불 켜놓으니 만리 고향 서성이네.
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창외삼경우 등전만리심

이국땅에서 깊어가는 가을밤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秋夜雨中) 모습을 담은 오언절구다. 고국을 그리는 쓸쓸한 내용이 담겨진 이 시의 작가는 통일신라 말기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고운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유명하며, 그는 유교·불교·도교 등에 조예가 깊었다.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읊조리니 /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은 적구나 // 창 밖에 밤 깊도록 비는 내리고 / 등불 앞에는 만리 고국 향한 마음만이 서성인다]라는 시상이다.
최치원은 약관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후, 17년간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한다. 884년 당 희종이 신라왕에게 내리는 조서를 가지고 귀국할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였다. 신라 헌강왕은 최치원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요직에 썼으나 다음해에 승하하는 바람에 최치원의 출중한 학문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결국 불운한 일생을 마감한다. √시인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고향산천을 그리워함은 인지상정임을 보인다. 자기의 학문과 인격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으로 보아 외로워하는 정황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외로움이 결국은 고국을 향한 만리심이란 향수로 번지는 고국애로 전개된다. √화자는 학문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자기의 재주를 몰라주는데 대한 서운함과 고국을 향한 만리심에서 엿본다. 예나 이제나 영재는 외롭다는 생각을 느끼게 한시다. 위 한시는 결구(結句)에서 보인 등잔불 앞에서는 고국심이 서성이고 있음에서 그 격을 높인다.

【한자와 어구】
秋風: 가을바람. 唯: 오직. 苦吟: 괴롭게 읊다. 世路: 사람들이 다니는 길. 少知音: 소리(괴로운 소리)를 알아듣는 이가 적다. // 窓外: 창 밖에는. 三更雨: 삼경(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내리는 비. 燈前: 등잔 앞. 萬里心: 만리타향에 있는 고향(신라)을 그리는 마음.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필명 : 장 강(張江)
현)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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