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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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강물처럼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1.12.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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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주방에는 오래 된 벽시계가 걸려있다.
처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가재와 유품을 정리하면서 버리려 하는 것을 아내가 친정아버지께서 처음 사가지고 오셨을 때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어머님이 생각나서 가지고 왔다고 하며 주방 벽에 걸어달라고 하여 지금까지도 어김없이 매 시마다 종을 치며 시간을 알려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 집에 온지도 벌써 20년이 넘었으니까 아내의 말로는 40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디자인도 예쁘지 않고 한 달에 한두 번은 태엽을 감아주어야만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그래도 아내가 부모님의 유품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고장이 나지 않는 한 언제나 지금의 제자리에 걸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시계의 추가 쉬지 않고 흔들리며 똑딱거리는 동안 하 많은 세월과 수많은 사연들을 내게 남겨 주고 가 버렸듯이 또 얼마만큼의 세월과 사연들을 내게 가져다주며 앞으로 내가 사는 날 동안 내게 주어지는 시간들에게서 또 얼마만큼의 흔적들이 어떤 모습으로 남겨지게 될까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내 인생 여정의 끝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여정의 뒤안길에 남겨진 흔적들을 뒤돌아 보면은 후회는 어리석다 하면서도 정말 남긴 것 없이 세월에 떠밀려 온 것만 같아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이제는 금년도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누구나가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되고 또 서글퍼 지게도 한다지만 금년은 더욱 그런 것 같다. 人生如駒過隙(인생은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이라 했던가? 인생의 세월은 수고와 괴로움만을 남기고 날아간다고도 하였으니 이렇듯 영원 전부터 영원을 향하여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을 사람들은 강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세월은 강물처럼” 나 젊었을 때 일기장들의 제목이다. 문득 그 때의 일기가 생각나서 책장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들을 꺼내 본다. 표지는 낡고 헤졌지만. 그때는 왜 일기장의 표지에다 이 제목을 붙였는지 또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미쳐 생각하지 못 했는데 수 십 여년이 지난 이제 와서 그 의미가 내게 이토록 절실 할 줄이야 그 때에는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 때는 그렇게도 꿈도 많았고 오히려 세월을 재촉하고 싶었었는데,
언제부터 불리운 노래인지는 몰라도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라는 유행가가 노년 세대에게서 애창 되고 있다. 시계가 멈추면 세월도 따라서 멈춘다면야 어느 누가 시계가 고장 나기를 바라지 않고 누구인들 세월을 잡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은 세월은 어느 무엇으로도 그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지나간 세월 그리워하고 지나는 세월 아쉬워하며 오는 세월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도 가져 본다. 더욱이 세월은 살아 온 나이 숫자만큼이나 그 속도가 빠르다고 말들 하는데 이제 또 한 해에 있었던 많은 일들이 또 그렇게 아쉬움으로 남게 되겠지만 훗날의 좋은 추억이기를 소망 해본다.
지난 해 이맘 때 새 달력을 머리맡 벽에 걸면서 또 새로운 시간과 삶이 함께 있음을 생각 하며 내게 주어 질 새로운 한 해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꿈과 설계도 함께 걸었는데 금년 한 해 동안 달력이 한 장 한 장 떨어져 나갈 때 마다 그 꿈도 함께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금년 한 해 동안 어쩌면 아내의 얼굴보다도 더 많이 달력을 바라보면서 메모도하고 낙서도 하면서 일정을 계획하고 약속도 잊지 않을 수 있어서 내 개인 비서와도 같았는데 달이 바뀔 때마다 생각 없이 떼어 버리면서 거기에 써 넣었던 내 삶의 조각들 그리고 내가 간직하고 있어야 할 소중한 삶의 부분들도 함께 버린 것 만 같은 생각이 이제 미련으로 남게 되는 것도 어쩔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보람을 생각 하며 위안도 가져 본다. 우선은 금년 한 해를 맞으면서 소망 했던 대로 가정과 주변에 큰 불행 없이 평안 하였기에 무엇보다 감사하고 다음은 보은 문화원 문화 교실에 다니면서 섹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찬송가와 애창곡 몇 곡은 그런대로 연주 할 수 있어서 친구가 되어 주니 이는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한 해 동안 목요 단상 원고도 빠지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것과 동양일보 신문사의 원고 의뢰로 나의 수필 한 편이 게재 되었던 일. 그리고 지역 노인 대학에서 봉사하며 배우고 강의를 한 것도 금년 한 해의 보람으로 남을 수 있어 스스로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이제 금년 한 해 동안도 이웃들로부터 받은 그 많은 사랑과 더불어 살아가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한 해를 정리 해 보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아야겠다. 그리고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 가는 이 한해에게도 손 흔들어 보내 주리라.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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