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우리 목가구 전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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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우리 목가구 전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 조순이 실버기자
  • 승인 2011.06.0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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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박명배 선생
소목장은 집 외에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즉 세간을 만드는 장인으로 오늘날에는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날카로운 대패, 끌, 인두 등을 사용해 거친 나무를 자르고 켜고 문질러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소목장.
경기도 용인의 한 조용한 시골마을에 전통 가구를 만들며 평생을 나무와 함께해 온 중요 무형문화재 제55호인 소목장 박명배 선생께서 작업하고 있는 영산 산방에 이른 아침 박명배 선생은 작업실에서 직접 디자인한 사방 탁자의 설계도를 그리곤 한다.
전통 목가구를 만들며 살아온 40여년의 세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박명배 선생은 친척 형의 소개로 18세 되던 1968년 최회권 서라벌예대 공예과 교수가 운영하는 오니공예미술연구소에서 일하며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1년 최회권 교수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되자 허기행 선생에게 전통가구의 짜맞춤 기법을 배우고 소목일에 발을 들인지 13년만인 1981년에 독립해 개인공방을 차려 운영했다.
어떤 일이든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박명배 선생은 목가구를 만드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재료인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제일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아무 나무나 베어다가 가구를 만들 수 없는 법, 갑자기 수분이 빠져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 나무를 베어 잘린 면에 풀이나 기름같은 것을 발라 2년정도 숙성시킨다. 그리고 실외에서 3년 실내에서 2년정도 더 놓아준 후에야 비로소 가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다.
이처럼 가구를 만드는 기초 재료가 되는데만도 무려 7년여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내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좋은 평가를 받을때마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고 박명배 선생은 이야기 한다. 성취감도 느꼈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렇게 자신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느꼈던 행복과 즐거움 때문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는 박명배 선생은 소목의 여러 분야 중 특히 사랑방을 구성하는 가구 즉, 사대부의 정신세계와 사상문화 등을 반영하는 간결하고 곧은 사방탁자와 서안같은 가구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박 선생의 작품 중에는 사랑방 가구가 많다.
그렇게 공방에서 묵묵히 가구를 만들어 오던 박 선생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1992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한 의장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그때 대통령상을 받은 의장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예전엔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었다고 한다. 생계에 도움이라도 될까 해서 출품했던 건데 대통령상까지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받은 상은 박 선생에게 큰 도움이 됐다. 생계해결 뿐 아니라 1998년 명장선정 201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으로 인정받는데 밑거름이 되어준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나서 박 선생에게는 큰 포부가 생겼다. 5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공예 즉 소목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선생은 요즘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전승자가 아예 없거나 적어 고민인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소목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현재 박 선생의 공방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만도 7명 또 일주일에 3번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 건축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 우리 공예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알고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치고 다 줄 생각이라고 한다. 환하게 웃는 박 선생은 생계 때문에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장인정신 하나로 우리 공예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 박 선생의 밝은 웃음에 우리 공예의 빛나는 미래가 함께하고 있다.
/조순이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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