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식당을 경영해서 많은 소득을 올리고 77세 나이가 되어 다시 귀향했다.
보은읍에 있는 동서장을 매입하고 종곡리에 전답도 장만하여 농사도 짓고 동서장 경영도 한다. 그러던 중 부인 송제희씨가 큰 수술을 받게 되자 동서장은 세를 주고 종곡마을로 합하여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시작했다.
김춘구씨와 송제희씨 부부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잔치상을 차린다 하여 부녀회원들에게 손을 빌려 보신탕 80근, 삼계탕 13마리, 인절미, 음료, 술, 수박 등 큰 잔치상을 펼쳐 노곤한 봄날에 크게 펼친 잔칫상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푸짐하게 먹었다.
이 부부에게는 2녀 1남의 자녀로 큰딸 김미숙씨는 미국에 거주하고 작은딸 김은미씨는 영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한다고 한다.
자식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국에서 영국에서 안부 전화에 두 딸들이 번갈아 전화를 해 꼭 2~30분씩 통화를 한다고 한다.
종곡리 제일 요지에 집질 터 200평 정도를 매입하여 평당 15만원씩 200평을 3천만원을 주고 매입한 터에 앞으로 딸들이 집을 지어 준다고 한다.
인생이란 허둥지둥 살다가 70이 넘고 80 고개 들면 누구나 이것저것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올해도 논농사, 고추농사를 시작했지만 해 봐서 힘이 들면 농사를 그만 두고 영국이나 간다는 말을 듣고 집도 져야하고, 영국도 가야하고, 인생사 나이가 많아지만 공연히 마음이 바쁜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평생 살아온 뒤안길을 잘 살건 못 살건 인생사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길에 누구나 급한 것 같다. 숨 가쁘게 살아 온 삶이 인생무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완전히 건강치 못한 부인 송제희씨는 종곡리 체험관 앞 정자에 앉아서 우리 동네보다 더 잘생긴 마을은 없다며 정든 고향 마을을 보며 “어떻게 산이 저렇게 빙 둘러져 마을을 감싸고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있어 보기 좋다.”고 말하며 자신이 살아 온 마을을 보고 감탄한다.
경주김씨 장유공 선조께서 700년 전 이 마을에 낙향하여 터를 잡고 오늘까지 효부부, 효자비, 의열비 등이 마을 중앙에 우뚝 서있으니 참 자랑스러운 마을이고 또 문객인 성운 선생님 비는 나라에서 크게 이름 난 비로써 누구든지 학술 지도에 빼놓을 수 없는 비다.
종곡리에 비각과 비작들이 세워져 옛 선조들의 전설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를 안은 비각들이다. 원으로 이은 산간 벽촌 막다른 부락 종곡리 구룡탑에 선조 장유공의 큰 산소라 일컬어 오고 마을 중앙에 큰 제실이 자리잡고 마을을 지키고 인제에 자손들이 배출되고 부자 마을로 조성된 부락이다.
매년 장유공의 은덕을 기리며 시제로 10월 1일에는 각지에서 자손들이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백여명씩 시제에 참배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 때는 열심히 일하여 노후에 편하게 지내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건강이 제일 이라는 단어도 비교할 것 없이 최고라는 것도 알 것이다.
김춘구씨와 송제희씨 부부도 “내 걸음이 이제 더 좋아 졌지요. 무를 때에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송제희씨의 건강이 회복되어 두 부부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또 그렇게 밑는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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