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고생한 고향 못잊어 귀향한 김춘구씨
상태바
젊어 고생한 고향 못잊어 귀향한 김춘구씨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1.06.02 0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춘구씨와 부인 송제희씨는 결혼하여 종곡리에서 풀뿌리를 걷어 내고 농사를 시작한 신혼 생활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해보았으나 소득이 변변치 못하자 시골 살림을 청산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식당을 경영해서 많은 소득을 올리고 77세 나이가 되어 다시 귀향했다.
보은읍에 있는 동서장을 매입하고 종곡리에 전답도 장만하여 농사도 짓고 동서장 경영도 한다. 그러던 중 부인 송제희씨가 큰 수술을 받게 되자 동서장은 세를 주고 종곡마을로 합하여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시작했다.
김춘구씨와 송제희씨 부부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잔치상을 차린다 하여 부녀회원들에게 손을 빌려 보신탕 80근, 삼계탕 13마리, 인절미, 음료, 술, 수박 등 큰 잔치상을 펼쳐 노곤한 봄날에 크게 펼친 잔칫상으로 온 동네 사람들이 푸짐하게 먹었다.
이 부부에게는 2녀 1남의 자녀로 큰딸 김미숙씨는 미국에 거주하고 작은딸 김은미씨는 영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한다고 한다.
자식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미국에서 영국에서 안부 전화에 두 딸들이 번갈아 전화를 해 꼭 2~30분씩 통화를 한다고 한다.
종곡리 제일 요지에 집질 터 200평 정도를 매입하여 평당 15만원씩 200평을 3천만원을 주고 매입한 터에 앞으로 딸들이 집을 지어 준다고 한다.
인생이란 허둥지둥 살다가 70이 넘고 80 고개 들면 누구나 이것저것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올해도 논농사, 고추농사를 시작했지만 해 봐서 힘이 들면 농사를 그만 두고 영국이나 간다는 말을 듣고 집도 져야하고, 영국도 가야하고, 인생사 나이가 많아지만 공연히 마음이 바쁜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평생 살아온 뒤안길을 잘 살건 못 살건 인생사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길에 누구나 급한 것 같다. 숨 가쁘게 살아 온 삶이 인생무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완전히 건강치 못한 부인 송제희씨는 종곡리 체험관 앞 정자에 앉아서 우리 동네보다 더 잘생긴 마을은 없다며 정든 고향 마을을 보며 “어떻게 산이 저렇게 빙 둘러져 마을을 감싸고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 있어 보기 좋다.”고 말하며 자신이 살아 온 마을을 보고 감탄한다.
경주김씨 장유공 선조께서 700년 전 이 마을에 낙향하여 터를 잡고 오늘까지 효부부, 효자비, 의열비 등이 마을 중앙에 우뚝 서있으니 참 자랑스러운 마을이고 또 문객인 성운 선생님 비는 나라에서 크게 이름 난 비로써 누구든지 학술 지도에 빼놓을 수 없는 비다.
종곡리에 비각과 비작들이 세워져 옛 선조들의 전설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를 안은 비각들이다. 원으로 이은 산간 벽촌 막다른 부락 종곡리 구룡탑에 선조 장유공의 큰 산소라 일컬어 오고 마을 중앙에 큰 제실이 자리잡고 마을을 지키고 인제에 자손들이 배출되고 부자 마을로 조성된 부락이다.
매년 장유공의 은덕을 기리며 시제로 10월 1일에는 각지에서 자손들이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백여명씩 시제에 참배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 때는 열심히 일하여 노후에 편하게 지내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건강이 제일 이라는 단어도 비교할 것 없이 최고라는 것도 알 것이다.
김춘구씨와 송제희씨 부부도 “내 걸음이 이제 더 좋아 졌지요. 무를 때에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송제희씨의 건강이 회복되어 두 부부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또 그렇게 밑는다.
/이흥섭 실버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