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부르는 고향의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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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부르는 고향의노래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1.04.0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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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추웠던 겨울이었기에 언제 봄이 오고 언제 동토가 풀려 싹을 돋울까 싶더니 어느새 풀내음이 실려 오고 목련은 꽃망울을 틔운다. 농가 마당 비닐하우스에서는 고추 모가 뼘만큼이나 자랐고 한쪽에 뿌려놓은 열무 상추도 제법 구미를 당기게 할 만큼 되었다.
지난해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봄을 빼앗겼었는데 이제 또 4월이 되고 보니 악몽 같은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며 새봄의 4월로 맞이하고 싶다. 또 금년 농사를 위해 바빠지게 되었으니 볍씨도 담그고 조금 있으면 못자리도 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야 먹을 것 걱정 없이 살게 되어 쌀이 귀한 줄 모르게 되었지만 이때 쯤 부터 시작되는 보릿고개라 일컫던 춘궁기에는 쌀 한 톨 보리 한 톨이 그야말로 생명과 다름없었기에 민초들에게 있어 식량을 위한 농사는 삶의 모든 수단이었다. 요즈음은 먹거리가 넘쳐흐르고 있어 정부가 음식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에 나서고 정책과 쌀값 하락은 벼농사를 기피하기 까지 되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도 준비해야 한다. 이대로 라고 하면 금년 가을 풍년이 든다 해도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 줄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렇다고 또한 변한 것이 어디 이 뿐이랴?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내게도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하기를 몇 차례 거듭 하였으니 사람도 바뀌고 인심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어 모두가 새로운 것뿐이니 너무도 많이 변한 이 현실에서 이제 옛날의 이봄을 추억하며 그 시절 고향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인가 보다. 이 맘 때쯤이면 파랗게 펼쳐진 보리밭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시냇가의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면 크고 작은 피리를 한 움큼 만들어 들고 다니며 부는 것이 둘도 없는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시끄럽다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지금 그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는 아련한 아픔은 나로 어린아이가 되게 하는 기쁨이기도 하다.
조금은 때 이이른 이야기이지만 못자리를 해 놓고 나면 그래도 좀 한가한 편이어서 끼리끼리 모여 천렵이라 하여 야유회를 하게 마련이었다.
평생을 살아온 내 고향 마을은 정지용님의 “향수”에서 처럼 시냇물이 먼 동쪽 끝에서부터 와서 마을을 휘돌아 다시 먼 동쪽 끝으로 흘러가기를 쉬지 않는다. 지금은 제방이 높게 쌓이고 콘크리트 보가 냇물을 가로막고 시내는 갈대에 뒤덮혀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나 어려서 시내에서 놀 때에는 그 물을 그대로 마실 수 있어서 좋았고 냇가는 온통 모래밭과 자갈밭, 그리고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마음껏 뛰놀고 뒹굴던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천렵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여일 전에 물속에다 미리 돌을 쌓아서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는데 이를 돌무지라 하였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산란을 하기위해 또는 제 집이나 은신처로 알고 돌무지로 몰려들게 되는데 천렵을 하는 날이 되면 그물이나 싸리로 역은 발로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돌무지를 둘러싸고 돌을 하나씩 들어내며 물고기를 잡게 되는데 이 때 메기를 비롯하여 구구리 꺽지 쏘가리 바가사리 등을 꽤나 많이 잡게 된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고기를 잡고 한편에서는 커다란 돌을 주어다가 솥을 걸어 밥을 짓고 매운탕을 끌이게 되는데 이 때 쯤 이면 채마전에 파와 마늘이 한 자나 자라 있어서 이것을 뽑아다가 듬뿍 넣고 고추장 간장 그리고 약간의 양념만 있으면 훌륭한 매운탕이 되었다. 여기에다 밀주 막걸리 한잔과 묵은지로 부쳐낸 김치전이나 장떡을 곁들이면 그동안의 모든 시름을 잊게 하기에 충분 하였다. 세월이 변하면서 지금은 냇물이 오염 되어 많은 어종이 사라지고 하천은 황폐 되어 옛날의 향취(鄕臭)를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 때의 소박하고 행복 했던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 할 것이다.
그러기에 그 옛날 조선의 명기 황진이의 무덤 앞에서 추모의 시를 지어 그를 애도했던 희대의 풍류객 백호 임제 선생도 일찍이 이렇게 봄을 노래했나 보다.
鼎冠撑石小界邊, 白粉淸油煮杜鵑, 雙著挾來香滿口, 一年春色腹中傳. (조그만 시냇가에 솥뚜껑을 돌로 괴어, 하얀 가루 맑은 기름으로 두견화 전을 부쳐, 젓가락으로 집어 드니 입안에 향기가 가득, 한해의 봄빛이 뱃속에 전 해 지네.)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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