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영원한 나의 인생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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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영원한 나의 인생 나의 길’
  • 천성남 기자
  • 승인 2011.03.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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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축구계 역사의 산 증인으로 바라볼 때 장덕진 전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기틀을 마련했고
현 정몽준 명예회장은 자립기반의 계기 이뤄내”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
보은군이 스포츠 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혼신의 열과 성을 다하며 전국을 향해 본격 홍보몰이에 나섰다. ‘매주 월요일은 여자축구 보는 날’이란 케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지난 21일 화려한 개막전과 개막식을 갖게 된 IBK기업은행 2011WK리그(한국여자축구리그)를 시작으로 6개월간 대 장정에 돌입하는 축구 전에 맞춰 축구계의 외길을 도도히 걷고 있는 한 인물을 조명했다. 현대프로축구단 코치감독과 10년 동안 KBS 축구해설위원을 맡았고 202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 부위원장,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위원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 축구계의 노장인 대한축구협회(KFA) 조중연(65·서울시 종로구 신문로1가 1-131 ☎02-2002-0600)회장을 만났다.〈편집자 주〉

◇유년시절 회인면 양조장집 장남으로 성장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88번지)는 그의 출생지다. 현 정상혁 군수와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과는 동향이기도 하다. 회인면 양조장을 운영했던 5대 독자였던 조부 조석구 옹의 손자로서 그의 유년시절은 그래도 유복한 환경 속에서 살았다.
“초등 4학년 때까지만 고향에서 살다가 조부님의 유지로 서울로 유학을 가야 하는 바람에 고향에 대한 기억이 그리 생생치는 않습니다만 어린 시절 냇물에서 물고기도 잡고 자연을 벗 삼아 친구들과 뛰어놀던 그 때 그 시절은 정말 무위자연 이었지요. 학창 시절, 방학 때는 종종 고향에 내려가 마음에 맞는 친구와 천렵도 하곤 했지요. 부친은 당시 조부님의 양조장과는 상관없이 청주에 있는 산업은행에 근무하는 은행원 이었지요. 그래서 조부님의 가업을 잇지는 못했습니다.”

◇중학교시절, 공부·축구와의 두 길에 관심 커

지난 1965년 회인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서울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서울 재동초등 4,5학년을 다니고 1969년에 중동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며 축구에 대한 인연을 본격 맺게 된다.
“작은 조부 댁에서 학교를 다니며 홀로 생활하다보니 골목축구를 하게 되었고 중 3년 때부터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았어요. 그 때만 해도 부모님은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지, 잘 하는지도 몰랐지요. 당시는 지금과는 다르게 공부와 운동 두 가지를 병행했으니까요. 중3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중동고 2학년부터 본격 축구 선수생활을 시작했지요. 그 때는 ‘합숙훈련’도 없었어요. 열심히 한 결과 청소년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기회가 찾아왔지요. 공부하며 축구한 결과 고려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왔어요. 당시는 체육과가 없어 사학과에 들어갔지요. 그게 축구인생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아요.”

◇현직 있을 때 고향에 유소년 엘리트축구팀 창단 희망

오는 2012년까지 임기만료인 그가 현직에 있을 때 고향 보은에도 유소년 축구팀이 창단됐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 했다.
“최근에는 학습과 운동을 함께 병행하므로 공부에 그다지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정규학습이 끝난 방과 후 학습을 이용,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제공은 어렸을 때 재능발굴과 체력향상 등의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자체에서 스포츠마케팅을 시작했으니 지원 면에서도 최적일 겁니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이 있지요. 어쨌든 고향에 유소년들을 위한 축구팀 창단이 이뤄진다면 그게 시작이 되고 장비문제라든가 지원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입니다. 기왕 여자축구리그전이 시작되었으니 이참에 보은을 전국에 알리고 외지사람이 많이 찾아와 농특산물에 대한 판매를 확대하고 축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전에 충북축구협회 의견도 뜻을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큰 것을 바라면 안 되고 초·중등까지 유소년 클럽을 만들어 주자는 계획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렇게 된다면 용구지원 등 필요 장비를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현 정몽준 명예회장 제의로 체육회전무이사

“축구인생을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지난 1983년에 슈퍼리그 프로팀 창단과 관련 현대자동차에서 팀 구성을 제의해 와 프로축구팀 감독을 모시고 코치감독을 대행 했었지요. 그러나 스카우트 파동으로 일시 팀이 해체되는 우여곡절 끝에 프로감독 자리에서 물러났지요. 그러던 1989년 쯤 어느 날 KBS에서 해설위원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와 처음엔 구설수에 오를 것이 싫어 거절하다 결국엔 응했지요. 그때 가장 뜯어 말린 것이 제 아내지요. 그러나 그것이 인연인지 10년 간 해왔어요. 그것을 기점으로 1998년 현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인 정몽준 회장이 전무이사로 같이 일해보자 말해주셔서 축구행정을 시작했던 거지요. 그러다보니 축구지도자, 감독코치, 해설위원을 비롯해 축구의 전 과정을 섭렵한 인생 경험이 어느새 수북히 쌓이더군요.”

◇6,70년대 윤보선 등 정계인사 축구계 대거 참여

“그러고 보니 지난 60, 70년대는 윤보선·신익희·민관식·여운영 등 정계 인사들이 체육계에 대거 참여했고 대한축구협회 기틀마련은 장덕진 회장시절이었고 정몽준 회장은 자립기반 마련 계기를 이룬 시기로 정의한다면 맞을 거라고 봅니다. 저는 축구계의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축구협회가 처음엔 30여억 원으로 시작해 이제는 우여곡절 끝에 1033억 원이란 예산으로 키워냈죠. 우리 축구계의 대표 팀 감독으로 유명한 히딩크를 비롯 아드보카드, 핌 베어백 등 수많은 유명 외국인 감독의 인사권에 관여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수많은 애환과 질곡의 삶을 거쳐 오면서 2005년 실무부회장직을 사퇴했지요. 현재 회장직은 직선제로 선출 4년 임기로 오는 2012면 말까지죠.”

◇인생관으로 진광불휘(眞光不煇) 등 마음에 새겨

가족으로는 모친 최경숙(85)씨와 두 살 터울인 부인 박현숙(63)씨, 성민(39) 성웅(34) 등 2남을 두고 있다.
평생 은행원으로 평생을 사셨던 수년 전 작고한 부친의 진광불휘((眞光不煇)를 절대 교훈 삼아 ‘항상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나서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 또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도를 맞추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퇴임 후에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축적돼온 그동안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엘리트 육성을 위한‘어린 꿈나무를 위한 축구교실’ 운영 계획과 고향에 있는 명산인 보은 속리산 문장대를 허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는 야무진 꿈을 대신하며 말을 맺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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