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은읍 교사2구 출신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근무하는 장태동(53세) 서기관이 그 주인공으로 1980년 2월 보은군 수한면사무소에 9급 서기보로 공직에 입문했다.
당시 면사무소 근무자는 면서기로 불리며 면에서 군청으로 영전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였다.
그는 면서기라는 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군으로 영전하기 위하여 ‘잠 안오는 약’을 사먹으면서 새벽두시까지 일하여 일벌레로 인정받아 82년 5월 당시 보은군 식산과 전입되었다.
식산과에 전입해 특유의 노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당시 요직부서인 내무과(행정계)로 자리를 옮긴 후 4년여간 보은군에 근무한바 있다.
더 소중하고 비중 있는 일을 하기위해서는 도청, 중앙부서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번의 실패 끝에 87년 전입소양고사에서 1등을 차지하며 충북도청 농어촌개발과로 전입에 성공했다.
도청에서 잠종장, 사회과, 감사과등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지방행정을 폭넓게 경험하면서 다시 중앙부처로 가려는 의지를 키우게 되었다.
당시 내무부는 중앙집권시대에 대표적인 권력기관이었다. 내무부에서 5급 사무관이 서기관으로 승진하면서 군수로 내려오던 시절이었다.
내무부에서 예산이나 인사를 독점하였고, 군수가 내무부 주사가 출장오면 직접 브리핑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내무부는 꿈의 직장이었고 내무부에만 들어가면 출세가 보장된 코스로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무부에 전입하기 위해서는 전입시험이나 장관이상의 아주 높은 사람의 빽이 필요했다.
아무런 배경이 없던 그는 전입시험에 2번 실패 후 3번째 도전하여 마침내 합격 91년 5월 내무부 지방세심의관실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으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약 7년여동안 국립경찰병원, 이북5도청, 지역정책과, 기획예산담당관실등 핵심부서를 두루 거쳤고, 잠시 인천 계양구청에서 세무과장, 지역정책과장, 계산3동장 등의 기초자치단체 경험을 쌓은 후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 전입했다.
고시출신이 아니면 승진이 어렵다는 중앙부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도개선담당관실에서 3년 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휴일은 반납하기를 거듭한 생활을 하자 그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이번에 중앙부처 과장급인 서기관으로 승진을 이루어 냈으며 승진소요연수만 경과되면 부이사관(3급)까지는 승진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 서기관은 “권한과 능력이 허락한다면 저를 키워준 고향 보은을 위해 도움이 되기위해 노력하겠다.”며 고향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현했다.
한편 장 서기관은 2001년 근정포장을 2010년에는 올해의 권익인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동광초학교(2회)와 보은중학교(23회)후 한국방송통신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가족으로는 수한면 차정 출신인 부인 최금주(48세)씨와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인 딸 우정양과 경희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윤석군을 두고 있다.
/나기홍기자
저작권자 © 보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