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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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날의 단상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1.02.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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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내 나이 정도 되는 사람들은, 유년시절 보름날에 겪었던 먹을거리와 놀이 그리고 볼거리가 많아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추억이 많을 것이다.
보름전날은 여름날이라 하며 오곡찰밥과 아홉 가지 이상의 나물을 저녁 일찍 먹었고 밤이 되면 둑길을 쫓아다니며 쥐불놀이를 했었던 일, 보름날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얼른 오빠를 불러 놓고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하며 더위를 팔았고, 부름으로 땅콩과 콩강정 등을 먹었던 일, 보름날 저녁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온 가족이 밖에 나와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동쪽산등성이에 달이 두둥실 뜨면 어머니는 얼른 소원을 빌라고 하셨다. 그 때의 소원은 매번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당에서 서성이다 보면 먼 산봉우리 몇몇에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에 아주 작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곤 했는데 그걸 보며 거기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참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산 아래 마을사람들이 한 해의 평안과 농사를 잘 짓게 해달라고 산 정상에서 개개인과 마을을 위한 제를 지냈을 것 같다.
그렇게 달이 뜰 때 까지는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그러다가 마을 골목길을 뛰어 다니며 친구들을 불러내어 모두가 모이면 머리를 맞대고 밥과 반찬 등을 훔칠 모의를 했다. 훔칠 집의 대상은 친구들 집으로 친구의 정확한 정보에 의해 활동을 했다. 장독위에 얹어 놓은 소쿠리의 오곡찰밥을 몽땅 들고 나오다가 넘어져 친구엄마한테 들켜 도망을 치던 일, 한동안 가슴이 쿵쿵거리는 두려움을 느껴야 했던 순간들, 김장독의 김치를 훔치다가 부주의로 흙을 넣었던 일, 그렇게 훔쳐서 모은 먹을거리를 친구 집 헛간에서 펼쳐 놓고 먹었다. 지금 어른의 눈으로 돌아보면, 아이들의 행동이 손바닥 안에 있어 도둑맞지 않을 것이지만 그 때의 어른들은 대보름날의 통과의례로 보고 눈감아 주었던 것 같다.
볼거리도 많았던 것 같다. 그 중 하나로 동네 집 모두를 돌며 지신을 밟았던 것이 생각난다. 가면과 변장을 한 사람을 앞세우고, 그 뒤를 고깔을 쓰고 풍물 복장의 사람들이 징, 북, 꽹과리, 장고 등 농악을 치고 그 뒤를 어른 아이 등 온 마을사람들이 동네의 집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그리고 마당 부엌 광 등을 밟고 걸으며 춤추면서 지신을 밟아 잡귀를 쫓고 연중 무사하고 복이 깃들이기를 빌었다. 그러면 그 집에서 막걸리와 안주 등 격려금을 내놓곤 했다. 그렇게 집집마다 다 돌고 나면 온 마을사람들은 한바탕 놀곤 했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되는 정말 멋진 축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 금줄이 쳐지고 오색 헝겊조각이 펄럭이는 서낭당, 길을 가다 보면 과일과 떡 하얀 쌀밥 그리고 화려한 색의 사탕이 짚 위에 얹어 있는 것들이다. 그런걸 보면 내 작은 가슴은 무서움에 떨었고 발은 잘 떨어지지 않았었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의 풍습으로 먹을거리와 놀이가 일부 남았지만 많이 사라진 것 같다.이렇게 우리나라 고유의 세시풍속이 이웃사람들과 마을 전체가 참여했던 것들은 점차 사라져 가고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설과 추석 명절만이 남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은 없고 늘 변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좀은 지겹도록 추웠던 겨울이, 물러가나 했는데, 다시 돌아와 찬바람과 추위를 몰고 왔다. 아직 땅은 꽁꽁 얼어 있고, 음지에는 하얀 눈이 그대로 있지만 늘 머무는 것은 없듯이 만물은 서서히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정월대보름날 둥글게 뜬 달을 향해 기원할 것이다. 온갖 어려움으로 마음과 몸이 아픈 사람들이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기를 그리고 그 분들에게 꿈과 희망의 봄을 선물해달라고 간절히 아주 간절히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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