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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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도구
  • 김옥란
  • 승인 2022.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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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안 써졌다.
서점이나 갔다 와야지 하며 집을 나섰다. 서점 안에는 소설가 김훈 선생의 집필실 풍경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보였다. 최신 장편소설 <하얼빈>도 보였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대한 독립을 위해 거사를 일으킨 내용의 소설이었다. 나는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책 제목 <연필로 쓰기>와 '나는 겨우 쓴다'라는 책 띠 문장에 끌려서였다. 거장 김훈 선생이 '나는 겨우 쓴다' 그런 말을 하다니. 위로를 받았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의 '연필은 나의 삽이다', 2부의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3부의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를 읽을 땐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글쓰기 도구를 가지고 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연필로 글을 쓴다. 연필이 글쓰기 도구다. 연필로 글을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까. 책상 앞에서 연필을 잡고 글과 씨름하는 소설가의 하얀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김훈 선생이 잡은 연필은 칼과 창이리라. 칼과 창을 손에 힘주어 와짝 거머쥔 김훈 선생이 병자호란 속에 눈 내리는 남한산성을 몇 바퀴나 돌며 비장한 모습으로 악전고투하는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뽀글이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어느 날 신문을 보며 생각했다. 글에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만년필 모으는 취미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종이 질이 아주 좋은 수첩에 만년필로 글을 쓸 때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노라고 했다. 만년필을 이제 겨우 60개 정도 모아두었다고 했다. 김교수는 자신의 뽀글이 머리만큼 자신에게 잘 어울리며 독자들을 즐겁고 기쁘고 유익하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희망과 열정이 만년필 수집으로 표출된 것이리라고 본다.
우리나라 최고 석학이고 지식인인 고 이어령 교수 서재에는 여섯 대의 컴퓨터가 있다고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만들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훌륭한 지적 재산과 정신적 보검을 나누어주고픈  열정 때문이셨으리라. 신문을 읽으며 나는 평창동 이어령 선생 댁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던 적이 있었다. 그분이 글쓰기 도구로 활용하는 그 컴퓨터들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유명인들의 글쓰기 도구를 생각해보았다. 글쓰기 도구의 첫 번째는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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