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찔레꽃 필 때면 ~
상태바
해마다 찔레꽃 필 때면 ~
  • 김종례 (문학인)
  • 승인 2022.04.28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은 우주 본연의 빛깔을 다 토해내며 제영토를 확장하려는 뿌리의 분투 가득하다. 생명의 지느러미들이 치열하게 내보낸 새순의 촉, 인고의 통증을 참아내며 터트린 꽃망울에 취해버렸던 4월이다. 삭정이에 일어나던 잎바람, 고목에도 피어나던 꽃바람이 우리네 뜨락마다 아찔한 꽃향을 뿌려놓곤 여름을 마중하러 갔나보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울타리나 논둑밭둑 저 넘어에 하얀 찔레꽃도 피어난다. 봄날 피었다가 져버리는 꽃들이 무수히도 많겠지만, 유달리 찔레꽃은 이 나이에도 잔잔한 그리움을 안겨주는 향수의 꽃이다. 어릴적 보리밭이랑 끝에 찔레넝쿨 한 무더기와 어머니의 잔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밭을 매시던 어머니가 한잎 두잎 따주시던 찔레꽃 달큰했던 그 맛, 박물장수 보따리서 풍기던 외제 향수와는 비교도 안 되던 상큼한 향내. 그리고 하얀 꽃잎은 꽃비 나비가 되어 넝쿨 아래 신기한 자수 한 마당 만들곤 하였지. 어린 소녀의 눈에 비춰진 봄날의 찔레꽃 수풀언덕의 풍광! 지금도 그것을 표현할만한 마땅한 시어를 찾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영상이었다.
  찔레꽃 하얀 잎을 조용히 바라보노라면 그 순박한 꽃잎 속에 또 하나의 꽃이 보인다. 찔레꽃 피어나던 추억의 언덕길을 종종종 넘어가신 어머니의 그림자. 구불구불 아리랑길로 떠나신 어머니의 뒷모습이 해마다 어른거린다. 철이 들기도 전에 너무도 일찍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서려있는 추억의 꽃. 화상 후의 불멸의 흔적이나 생채기처럼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 어머니의 그림자 찔레꽃! 달무리 같았던 유일한 피붙이 내 존재를 아직도 차마 못 잊으시는지, 해마다 우리집 울타리에도 찔레꽃이 피고나지며 나를 웃기고 울린다.
  신동호 시인님 역시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찔레꽃에 어필하여 심금 울리는 시를 남겼다.‘나의 어머니에게도 추억이 있다는 걸, 참으로 오래 되어서야 느꼈습니다. 마당에 앉아 봄나물을 다듬으시면서, 구슬픈 콧노래로 들려오는 하얀 찔레꽃.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운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참으로 뒤늦게야 알았습니다. (중략) 손은 나물을 다듬으시지만 마음은 저편, 상고머리 빛바랜 사진속의 어린 어머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어머니의 둥근 등을 바라보다 울었습니다. 추억은 어머니에게도 소중하건만, 자식들을 키우시며 그 추억을 빼앗긴 건 아닌가 하고~ 마당의 봄 때문에 울었습니다.’또 찔레넝쿨 아래서 나눈 사랑의 약속을 이루지 못한 연민을 절절하게 노래한 이도 많다.‘찔레꽃 향기는 별처럼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나도 4월이 가고 5월이 오는 이때쯤이면, 내 유년 애수의 꽃이 된 찔레꽃 가사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겨났다.‘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플 때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이제 봄꽃이 진 자리마다 새잎이 돋아나며 가정의 달, 어버이의 달과 함께 진록의 녹음성하가 시작된다. 우리말 중에‘철(哲)난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하늘로, 어머니를 땅으로 모시고 살았던 우리 조상은 어린 나이에도 일찍 철이 들었던 민족이다. 일찍 철이 든 조상들은 충효를 삶의 첫 번째 신조로 여기며,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정립하고 살았던 찔레꽃 같은 민족이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생각하였으며, 제일 큰 효도는 부모님 영혼에 기쁨을 드리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기에 최고의 효도는 깨달은 사람, 즉 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가지가 잠잠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자식이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란 말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숙어가 되어버렸다. 해마다 봄은 돌아와서 작년에 피었던 꽃들이 다시 웃고 서있지만, 한번 떠나신 부모님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 어디 있으랴! 이 세상에 부모자식 관계보다 더 오랜 기간의 유통기한이 또 어디 있으랴! 자식은 스스럼없이 부모 곁을 떠날 수 있겠지만, 부모는 그런 자식의 그늘막이 되고자 이 세상과의 씨름을 멈출 수 없는 업보이리라. 코로나로 인하여 더욱 외로워진 이 땅의 부모에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의 선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식의 따뜻한 눈빛과 사랑의 말 한마디에 부모의 가슴은 맥없이 녹아내릴 것이거늘~ 떠나신 후에도 해마다 자식 가슴에 한송이 찔레꽃으로 피고나지는 부모이거늘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