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소리와 삭은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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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소리와 삭은 식품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2.01.13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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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김모씨가 ‘호랑나비’ 노래로 절찬리에 방송을 타고 있을 때, 장인어른이 “저게 무슨 노래냐?” 면서 체널을 바꾸시던 기억이 난다. 당시 가수들의 고운 목소리에 비하면 김씨의 목소리는 전연 엉뚱한 리듬에 컥컥한 쉰 목소리였는데 나는 오히려 그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가령 ‘호랑나비’가 ‘푸른 하늘 은하수’ 노래를 부른다면? ‘동백아가씨’ 가수가 ‘호랑나비’를 부르거나 서로 바꿔서 불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미 파장(장이 끝남)이 되고 모두 자리를 떴을 것이다.
국악의 판소리는 고운 소리가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 소설가 곽모 작가와 지방시인 한 사람이 낀 자리에서 같이 막걸리를 한잔씩 걸치면서 담소하고 있던 중에 나는 “판소리는 썩은 소리”‘라고 말해버렸다. 결코 판소리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고 소죽통의 삶은 여물 냄새가 풀풀 나는 투박한 소리라는 뜻이었다. 그런 얼마 후에 곽작가를 만났더니 “이과장이 말한 ‘썩은소리’를 제목으로 그가 시까지 썼다.”면서 재미있어 했다.
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음식도 있다. 음식은 보통 날로 먹기보다는 삭혀서 먹는 것이 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된다. 김치와 된장, 간장이 그렇고. 홍차도 그런 것이다. 삭힌 음식은 동물들의 입맛에도 맞는 모양이다. 대량으로 소를 키우는 농가에서는 가을에 ‘공룡알’처럼 만들어 놓은 볏짚뭉치를 겨울 내내 소에게 먹이는데 그동안 약간 삭아서 변질된 볏짚을 소가 잘 먹는다고 한다. 동물성 식품의 경우 젓갈류가 그런 음식이다. 전라도의 음식인 홍어가 대표적인데 그쪽 지인들의 말로는 홍어(특히 흑산도 홍어가 최고라고 한다)를 잡으면 해풍이 부는 바닷가에 널어서 위에 가마니를 덮어 놓는다고 한다. 홍어는 썩으면서 살이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그 위에 구더기도 생기는데 떨어버리면 그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홍어는 썩히는 정도에 따라 맛이 서로 다르지만 보통은 약간 썩힌 홍어를 좋아들 한다고 한다. 홍어는 많이 썩힌 것일수록 냄새와 매운맛이 진하다. 진짜 홍어맛을 보러가자는 지인들의 권유로 그 후 전라도 여수로 내려가서 흑산도홍어 진짜(많이 삭힌 것)를 먹어보았다. 아! 그 첫맛, 코를 탁 쏘는 진한 냄새와 매운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도 먹을수 있어!” 하면서 참고 먹은 탓에 지금은 많이 썩힌 것도 잘 먹는 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먹지 못할 것이다. 지인들은 “홍어 썩힌것”이라고 했지만 실은 많이 삭힌 홍어라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썩은 육류는 절대로 먹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다시 국악 이야기지만, 국악에서 판소리는 ‘썩은 소리’에 해당한다. 가까운 지인으로 보성의 판소리 명창 조모씨(전, 인간문화재)의 심청가 대목을 들어보면 그 목소리에 얼마나 곰삭은 맛에 정감이 가는지 느낄수 있다. 한여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처럼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가수 김씨의 ‘호랑나비’도 실은 현대판 썩은 소리였다. 서양음악에서 썩은 소리는 용납되지 않는다. 기악의 경우, 합주단의 수많은 악기가 내는 예민한 소리까지도 지휘자는 귀신같이 잡아낸다. 판소리는 서양음악의 소프라노 가수의 티끌 없는 그런 고운 소리가 아니다. 판소리는 분위기에 따라 온갖 잡것이 다 들어가는 털털한 소리다. 사람의 취향이란 자꾸 들으면 싫어지는 법. 그렇게 고운 쏘프라노도 자꾸 들으면 지겨워지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곰삭은 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젊은 것이 좋다고들 하지만 풋내 풀풀 나는 어린 사람이 이익집단 정치판에 끼어들어 한물간 정치꾼들의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며 “벌써 저런 것이 앞으로 뭐고 될꼬” 하는 생각에서 보기가 민망하다. 젊은이의 장점은 패기와 순진함인데 벌써부터 저렇게 늙은 여우처럼 개인 이익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온갖 음모질을 한다면 이미 그는 젊은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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