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를 맡고 보고 듣고 먹고 만지게"
상태바
"향기를 맡고 보고 듣고 먹고 만지게"
  • 보은신문
  • 승인 1997.08.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현대 농장 시찰기, 신종 허브산업 인기
아직도 농업선진국에 비하여 미천한 자본 및 대단위 기업농의 농사경험 부족과 정보의 부재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우리네 농촌현실과 비교하여 보았다. 외국에 비하여 농장운영에 국가적인 지원이 많은 우리네 농촌은 농장경영기법의 체계화 되지 않았고, 급작스런 정부의 농업기업화 정책의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외국의 기업농과 비교 함으로써 앞으로의 농장 경영이 선진국화 될 수 있도록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한국경제신문의 조기철 객원기자와 함께 합동취재하여 몇편의 경험담을 소개해 본다. <편집자 주>

집의 정원이나 산이나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나 풀들로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을까. 땅과 함께 호흡하며 삶의 가치를 느끼고 돈벌이도 되는 멋진 자원이 되지는 않을가. 이런 소박한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일본 사람들이 최근 늘고 있다. 도꾜에서 동쪽으로 차로 달려 3시간 거리에 있는 허브아일랜드는 그런 대답을 실증해 보이는 현장이었다.최근 일본에서 허브아일랜드는 국내외관광객들에게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농민들에게는 소득증진의 장소로써 인기를 모으는 관광농원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농원은 다른 농장처럼 화려한 꽃이나 채소 과수들로 뒤덮인 곳이 아니다. 온통 야생식물과 특용작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농원은 보잘 것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들 식물을 재배해 관광업 음식료업 목욕업 호텔업 교육사업 잡화점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느 재벌그룹들 못지 않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농원이 가꾸는 것은 오로지 허브뿐, 한국교민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용어지만 허브란 독특한 향기를 지니며 그 기능을 이용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모든 식물을 통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맛을 내고(향신료, 양념류) 향기를 즐기고(향료) 색을 내고(염료) 약으로 쓰는 (약용) 등 우리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녹색의 야생식물들이다. 박하(민트)라벤더 바닐라 올리브 로즈마리 알로에등 유럽과 열대지방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품종과 후추 깨 생강등 동양에서 주로 재배되는 특작물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는 헤아릴 수 없어 많다. 일본의 지바현 미스미군 오타키마치의 한 농촌에 자리잡은 허브아일랜드는 이런 허브를 전문적으로 재배해 농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발전 시킬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천해 보인 농원이다.

주위에는 그저 논과 밭으로 둘러 싸여 있는 평범한 시골의 약 5천평정도의 조그마한 동산을 가꾸어 꾸민 이 농장에는 세계 곳곳에서 자생하는 약 6백여종의 허브가 재배되고 있다. 모든 식물이 독특한 모습과 특이한 향기를 지녀 농원에 들어서면 향긋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향기의 파라다이스』이다. 이곳의 입장료는 1인당 5백엔, 그러나 매표소에서 이름을 등록하면 그 다음에 올 때부터는 입장료가 무료이다. 한 번 찾은 손님을 또다시 찾게 만들어 부대사업수입을 늘리자는 일본다운 착상이다.

농원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우선 곳곳에 품종별 원산지별로 심어져 있는 각종 허브들의 자태와 다양한 색깔을 지닌 꽃들을 감상하면서 향기를 즐긴다. 그 다음 찾는 곳이 식당, 유리 온실로 꾸며 놓은 레스토랑에는 허브로 만든 각종 요리가 준비 되어 있다. 다양한 허브중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샐러드로 먹거나 취향대로 스테이크 소시지 생선요리 등에 허브를 첨가해 요리를 만들어 줄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이들 음식 대부분을 요리사들이 현장에서 손님의 요구에 따라 즉석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 30분내지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이 틈을 노린 농장측은 식당의 한 코너를 허브관련제품의 판매장으로 꾸며 관광객들의 구매의 욕을 자극한다.

허브꽃 묘목을 파는 코너, 허브를 가공한 과자, 치즈, 소시지, 술, 잼, 차, 꿀등 각종 식품류를 판매하는 코너, 허브화장품 비누 오일 향수 방향제등 잡화를 파는 코너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각종 식물로 물들인 옷이며 손수건 머플러 실 천등 섬유제품을 팔기도 하고 한 구석에서는 허브의 재배활용법 정원 꾸미기 사진집 등 관련 책자를 판매한다. 자신들이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미식가들은 허기도 잊은채 허브향내를 맡으며 이것 저것 제품을 구입하곤 한다. 각종 허브로 맛을 낸 음식을 다 먹은 후 관광객들은 또다시 정원에서 새소리 풀벌레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한 다음 허브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린다.

목욕탕욕조에는 계절에 따라 허브들을 물위에 띄어 놓아 각종 향기가 가득하다.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약용욕실에서 몸을 풀고 몸을 말리면서 허브로 만든 각종 향수를 바르고 난 후 욕실 밖에 마련된 칵테일바등에서 허브술이나 허브차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고 낭만을 즐긴다. 또한 이 농장에는 허브의 본 고장으로 알려진 프랑스 노르망디지바으이 전통적인 민가를 본떠 만든 호텔이 있어 여유가 있는 국내외관광객들은 며칠씩 묵기도 한다. 방마다 허브의 향기가 그윽함은 물론이다. 농원구경을 마치고 나서는 관광객들에게는 돈을 쓰게 만드는 관문이 있다.

출구에 있는 종자와 묘 화분등 원예작물 판매소가 그곳이다. 허브의 자태와 향기를 넋을 잃은 도시인들은 농장을 나서기 직전에 있는 판매점을 거치면서 「나도 허브를 재배해야겠다」는 유혹에 빠져 각종 허브의 씨앗이나 모종을 사가곤 한다. 소비자들이 사지 않고는 못배기게 만드는 일본인들의 독특한 상술이 일본의 조그마한 농촌에까지 배어 있는 것이다. 이 농원의 소유주인 다카츠씨는 이 사업을 벌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시즈오카에서 꽃과 채소를 재배하던 그는 평소 해외에 다니면서 유럽지역에서 잘 가꾸어진 허브농원에 관심을 갖고 70년대부터 곳곳에서 허브종자를 수집해 시험재배를 시도했다.

이후 80년대 들어서 허브를 전문생산하는 농장 2ha를 조성,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요리에 사용되는 1백여가지의 식물을 재배해 고급호텔 레스토랑에 납품했다고 한다. 이후 식품이 고급화 다양화 패션화되어가는 추세에 따라 일본 및 해외에서의 수요가 늘면서 허브의 재배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어 84년부터는 허브를 주요생산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본금 3백만엔을 투입하고 가공제품공장을 설립했다. 88년부터는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데 힘입어 자본금을 늘리고 농장에 관광객을 받을 수 있는 편의시설을 확충해 관광객들로부터 입장료를 받는 본격적인 관광농원사업에 이르기 된 것이다. 허브아일랜드의 이런 경영전력은 새로운 생활상을 구가하려는 현대인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져 큰 붐을 일으켰다.

일본 유명관광지에 허브아일랜드와 유사한 관광농원이 속속 생겨 나고 허브관련단체와 허브관련잡지들이 잇달아 발간되는 등 새로운 사업분야로 자리잡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허브 산업은 앞으로 농업이 그리고 농업을 비즈니스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농업이라하면 단순히 먹거리나 제공하는 단순농업이었지만 허브아일랜드의 사업아이디어는 이를 입으로 맛을 즐기게 하고 눈으로 보아 즐겁고 코로 향기를 맡게 하며 귀로 자연의 소리를 듣고 피부로 허브의 향을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오감(五感)농업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본래 유럽에서 발달된 허브정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모방과 창조의 묘를 적절히 살린 일본의 한 농장주의 지혜는 『농사도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우리농민들에게 던져주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