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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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예찬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9.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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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온통 코로나와 태풍으로 난리다. 집안에만 들어박혀 기약도 없는 가택연금생활을 하고 있자니 이제는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모든 메체들은,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만날 때도 마스크를 꼭 끼고 거리를 두고 만나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연락이 온다. 그래서 오랜만에 오는 친구마저도 왜? 하필 이런 때? 하고 마스크를 끼었는지 먼저 확인하게 된다.
이런 중에도 각종 과일과 체소들이 쏟아져 나오긴 하지만 값이 크게 올라서 옛날 같지 않다. 또 시장마저 폐쇄되어 바닥 민심마저 흉흉해진다.
우리집은 과일이 거의 주식이다시피 해서 집에서 과일은 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나는 과일 중에서도 살구를 좋아한다. 예쁜 황살구를 보고 있노라면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하는 고 유치환시인의 “춘신(春信)”이 생각난다. 학창시절에 암송하곤 했던 애송시였다.
봄꽃 중에도 진달래는 혁명과 피를 좋아하는 무자비한 집단이 좋아하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어 섬뜩해진다. 핏빛 진한 붉은 색깔도 좋아하지 않는다. 살구는 작지도 크지도 않고 그저 손안에 쏘옥 들어온다. 아기 손에도 꼭 쥐어질 그런 예쁜 크기다.
살구는 칼로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고 씨 빼고는 버리는 것 없이 통째로 먹는다. 새큰달착한 맛에 식감도 찰떡을 씹는 느낌이 든다. 배나 사과에 비하면 과육에 습기가 없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도 않다. 잘 익은 살구는 신맛을 능가하는 단맛이 난다. 발그레한 새댁이 입덧과 함께 살구가 먹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가장 반기는 사람들이 친정부모, 시부모와 남편이다. 신 것으로는 식초가 있겠지만 그것은 그냥 시기만 할 뿐이다. 약간 신 과일로는 석류와 매실도 있지만 그것은 외피가 살구만큼 곱지도 않다.
살구가 완전히 익으면 신맛은 사라지고 단맛만 남아있어서 맛있다. 임산부는 이러한 살구가 제일 먹고 싶었을 것이다. 살구는 색깔, 맛, 아담한 크기 등 모두가 좋지만 내가 살구를 더욱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익은 살구를 손으로 쪼갤 때는 과육과 씨가 깔끔하게 분리되는 순종(順從)의 모습을 본다.
과육 속에 숨어있던 씨는 몸을 세상에 들어내기 전에 깨끗이 목욕하고 나타나는 정결함이 있다. 거짓 없고 깔끔하고 순종형인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살구가 더욱 좋아졌다. 살구는 씨와 살이 분리될(헤어질) 때는 청승스런 눈물 같은 것은 결코 흘리지 않는다. 맛으로는 망고가 최고겠지만 먹을 때는 끈끈한 망고진액을 온 손에 묻히는 지저분함이 있다.
특히 씨에 붙은 과육이 아까워서 손에 쥐고 먹을 때는 아주 난감하다. 잘 익은 수밀도(복숭아) 역시 과육과 씨가 서로 엉겨붙어 있어서 지저분해진다.
아삭한 햇복숭아도 맛은 있지만 칼로 쪼갤 때는 씨의 딱딱한 외피까지 쪼개져 버림으로써 진짜 속씨가 발랑 들어나는 경우가 있어서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살구는 손으로 쪼갠 과육표면이 마치 갓잡은 싱싱한 생선회를 대하는 것 같다. 살구는 열량이 낮아서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있어서 암 예방에 뛰어난 효과가 있고 항산화작용과 함께 눈, 혈관건강에 좋은 식품이라고도 한다. 씨는 행인(杏仁)이라고 해서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살구는 한자로 ‘殺狗’(죽일 살, 개 구)로 쓰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개가 살구씨를 먹거나 살구나무에 개를 묶어놓으면 개가 죽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믿겨지지 않는다.
우리네 생활의 일부인 사람들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살구 같은 깔끔한 사람이 좋다. 씨와 과육이 구분도 없이 서로 엉겨 붙어있는 과일처럼 음흉한 사람들 중에는 큰 사기꾼들이 더러 있다. 우리네 한평생에서 살구 같은 사람들만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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