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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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싸움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0.06.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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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청소년 시절에는 자기가 하는 운동이 제일 강하다면서 서로가 언쟁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태권도와 유도였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권투의 일종인 태권도는 주로 주먹이나 팔굽 등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공격을 막으며 치고 쓰러뜨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유도는 주로 상대방을 손으로 잡고 발과 허리 등의 힘을 이용하여 쓰러뜨리는 기술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양자는 차이가 있다. 레슬링은 유도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러면 권투와 레슬링이 한판 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
 유도와 권투의 대결을 생각하니 옛날 티비를 통해본 알리와 이노끼의 시합이 생각난다. 1970년대로 생각되는데 세계적인 프로복싱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의 유명한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끼가 한판 시합을 붙은 일이 있었다. 이 이색적인 세기의 시합은 호기심 많은 관객들과 돈을 벌려는 두 사람의 호응으로 이루어진 닭싸움, 소싸움 놀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상대방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고 경기규칙도 새로 만들어졌다. 일단 시합이 시작되자 “핵펀치” 알리의 주먹에 한방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노끼는 알리의 주먹을 피하면서 공격하는 전법을 썼다. 자신은 비스듬하게 누운 자세에서 무릎아래를 걷어차면서 쓰러져 눕는 ‘다이빙 킥’ 전략이었다. 이에 대해서 알리는 로프를 잡고 상대방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로프 이스케이프”로 대응했다. 그 결과 이노키는 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였고 알리는 서서 내려 보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시종 누워있는 이노끼의 자세는 레슬링의 공격기술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자세는 아니었다. 분통이 터진 알리는 누운채로 자기를 올려다보고 있는 이노끼를 향해 “누워서 돈을 버는 창녀”라면서 계속 조롱했지만 이노끼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일어나서 당당히 싸우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지 못했다. A석이 30만앵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입장료들을 내고 싱거운 경기를 보고 앉아있는 관객들의 답답함은 더 심했다. 결국 두 사람의 경기는 무승부로 결론짓고 말았다.
 그런데 극과 극의 대결 즉, 눈뜬 사람과 소경이 한판 붙을 경우에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시각장애인집과 이웃하여 살고 있는 한 친구가 “느그들, 봉사들 싸우는 것 봤어? 가당 찮드라!” 하면서 끄집어 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코 눈뜬 사람만의 일방적인 게임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눈이 안보이니 우선 소리로서 기선을 제압하려고하기 때문에 초반전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다. 좀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들 싸우는 소리에 지붕이 날아갈 것 같더라고 했다. 싸움이 격해지면 서로 붙잡고 싸우는데 그들은 힘이 하도 세서 붙잡히기만 하면 “국물도 없다”고 한다. 넓은 운동장에서라면 몰라도 좁은 공간에서는 “눈뜬 사람이 이긴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말라”고 했다. 그렇다. 눈뜬 사람이 권투선수라면 소경은 일단 손으로 잡고 결판을 내는 레슬링선수다. 노치면 자기가 죽으니 사생결판을 벌일 것은 당연지사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참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는 발버둥을 그 누가 그르다고 할 것인가.
 지금까지 친구의 경험담을 듣고 쓴 것이지만 소경들은 일반인들보다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는 보호해야할 불쌍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늘 같이 대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치부들 까지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보는 사람들보다는 마음이 모질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런 처지에 처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가 있다. 물리적인 싸움에서 점잖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보면 심보 나쁜 ‘단순무식꾼’들도 많이 있어서 참는데도 한계가 있더라.
 그래, 오늘 또 하나를 배웠다. 인생은 그저 죽을 때까지 배워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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