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할매들 한글 배우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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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 할매들 한글 배우기 도전
  • 주현주 기자
  • 승인 2019.12.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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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 탈출해 이야기 책 3권 출간 화제
한글을 뗀 할매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 발표 및 수료식을 열었다.
한글을 뗀 할매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 발표 및 수료식을 열었다.

까막눈을 면하고자 한글배우기에 나섰던 할매들이 자서전을 출간해 화제다.
보은읍 종합시장 초입 2층 ‘흙 사랑 한글학교’에는 매일 오후만 되면 시장바구니를 든 할머니들이 들락날락 거린다.

대부분이 파마머리에 흰머리가 대부분인 할머니들이지만 등교하는 학생들처럼 생기발랄하다.

배우는 학생이 어르신인 것만 빼고는 여느 학교와 같다.
일찍 온 할머니들은 옆 짝꿍과 수다를 떠는 모습이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같다.

어르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실로 들어선 선생님은 흡사 손자 내지는 증손자 뻘이다.
반장이 “일어나 차렷! 선생님께 인사!‘를 외치자 모두가 입을 모아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선생님은 “어제 배운 내용을 다시 한번 복습하고 다음 진도를 나가겠다”며 책 읽어볼 사람을 찾는다.

서로가 삐죽삐죽 눈치를 보던 할머니들 중 한 할머니가 수줍은 색시처럼 부끄러운 듯 손을 들고 “선생님 제가 한 번해 보겠습니다”하고 돋보기를 찾아 끼고 더듬더듬 읽어 내려간다.

선생님이 “잘하셨다”고 칭찬을 하자 숙제검사를 끝낸 교실처럼 왁자지껄해 진다.

선생님은 “ 날씨도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고 집에 가셔서 예.복습하시느라 수고하셨다”는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고 칠판에 큰 글씨로 한글을 써내려 간다.

수업을 마친 어르신들이 조심조심 계단을 다 내려가 길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가 내일 등교약속을 하며 배웅을 한다.

이렇게 까막눈 할머니들의 한글 깨우치기 도전이 시작됐고 하나하나 써내려간 일기며 이야기가 보은군과 보은교육지원청의 후원으로 지난 11월 27일 ‘웃고 웃던 어린 시절’, ‘서럽지만 뿌듯했던 날들’, ‘꿈꾸는 할매들’ 3권의 책이 출간됐다.

강정자 할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4남매를 키우기 위해 고생을 밥 먹듯이 했다”고 회상한다.
할머니는 “식구들이 같이 밥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부모님이 계시면 밥을 직접 차려 같이 먹고 싶다.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대학도 졸업하고 공무원이 돼 좋은 남편과 예쁜 딸.아들을 낳고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적었다.

김상남 할머니는 생일에 떡과 미역국을 꼭 끓여 준 어머니를 회상했다. 그러나 “시집을 오고 생일이 없어졌다. 생일이 되면 친정엄마가 챙겨 준 떡과 미역국이 생각난다”며 “그 시절로 돌아가면 친정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싶다”고 회상했다.

이옥순 할머니는 8살 되던 해 어머니를, 9살 되던 해 어버지를 여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올케 밑으로 들어가 애기를 볼보다가도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두르고 학교 가는 친구들이 한 없이 부러워 뒤돌아서 울었던 서글픈 이야기를 82세에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

조순이 할머니는 먹을 것이 없어 보리이삭을 주우러 간 길에 부잣집 일꾼들이 일부러 보리를 눌러 가져가라고 했던 일이며 짚신을 신고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히고 가슴 아파 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보약 한 첩 못 해준 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 46년간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많이 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적었다.

이화자 할머니는 버려진 기억을 떠올렸다. 고아원을 전전하다 품삯도 없이 일만하고 군인과 결혼했지만 구박을 당하고 쫓겨나 식당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떼인 이야기, 신협에서 대출을 받아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끝까지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운 이야기를 적으며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 이야기를 ㅤㅆㅓㅅ다.

김순옥 할머니는 “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8살 때 화장실에 빠져 나쁜 기운을 없애기위해 ‘백설기 떡’을 해먹은 이야기, 추석빔에 대한 설레임, 27살에  시집왔지만 남편은 리비아로 일하러 갔는데 글을 몰라 남편의 편지를 일지 못해 마음 졸인 이야기”를 담았다.

여든의 나이에 한글을 배우러 나온 홍명선 할머니는 6.25 전쟁을 겪고 홍역과 말라리아로 두명의 동생을 잃었다. 학교에 못가 배움의 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교육만 하느라 부모님에게 효도할 생각을 미처하지 못했다.“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공부는 한이 됐다”고 이야기 한다.

박춘자 할머니는 쌀이 귀하던 시절 부모님은 “쌀밥을 먹으면 체한다”며 밀가루로 빵떡과 국수를 매일 먹었던 기억과 18살에 시집을 갔지만 고된 시집살이에 ‘다시 태어난다면’ 장사로 돈을 많이 벌어 사람들과 나누고 살고 싶은 소망을 적었다.

이금선 할머니는 자신을 낳다 하혈이 멈추지 않아 운명한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당시 이화여대를 나온 신여성이었던 어머니가 포목점을 하며 만들어 주던 색동저고리, 자신을 살뜰히 돌봐준 아버지에 대한 그림움을 진하게 적었다. 다시 젊어진다면 “여행과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 엄마처럼 똑똑한 여성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적었다.

전갑순 할머니는 학교 대신 어린 나이에 묘목밭이며 자갈을 지고 날라 뚝방 쌓으며 품삯으로 우유와 밀가루를 받아 동생들을 돌본 이야기며, 아직도 중학생 교복과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꿈을 꾸는 할머니는 “흙사랑 학교에 다니는 지금이 행복하다”며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적었다.

3권의 자서전에는 소녀가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개인의 일상을 넘어 어렵고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모두에게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평균나이 70세의 어르신들이 “죽기 전에 까막눈을 면해 내 이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못 배워 당하고 푸대접받고 뒤돌아서 남몰래 서러움에 울었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더욱 가슴으로 다가온다.

흙 사랑 박일규 지도교사는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덧 동화가 돼 고달프고 힘들었던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 어르신들이 가슴 아파 눈물짓고 함께 울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마음 한구석에 따뜻함이 솟아나는 ‘정’으로 자리 잡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박옥길 사무국장도“배움에 한이 맺혀 흙 사랑 한글학교 2층 계단을 허리 굽혀 올라오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안타깝고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사무실 월세 독촉도, 보조금을 감액하겠다는 이야기에도, 비록 교실은 곰팡이가 피고 지도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어렵게 운영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어르신들의 배움 열정에 끝까지 응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흙 사랑 한글학교’에는 평균연령 70대의 할머니 70여명이 2층을 오르내리는 수고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좁은 교실에서 서로의 살을 부대끼며 ‘글자를 깨우쳐 죽기 전에 까막눈은 면하자’는 생각으로 11명의 지도교사로부터 한글 배우기, 글짓기, 미술, 수학,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보은지역 중학생들과 매주 목요일 만나 보은지역의 문화, 전통놀이, 전래동화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흙 사랑 학교’까지 등교가 어려운 할머니들을 위해 지도교사들이 산외면과 삼승면 천남, 원남리, 보은읍 극동아파트 경로당으로 출장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까막눈 면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매들이 자서전 3권을 출간했다.
까막눈 면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매들이 자서전 3권을 출간했다.
교복입고 가방메고 중학교 가는 것이 평생소원인 할매들이 중학생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교복입고 가방메고 중학교 가는 것이 평생소원인 할매들이 중학생 교복을 입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열악한 재정으로 교실 천장에 곰팡이가 폈다.
열악한 재정으로 교실 천장에 곰팡이가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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