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는 사람이 없다 아니다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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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는 사람이 없다 아니다 사람이 많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19.07.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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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경주의 최제우 선생은 조선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동학을 창도했다. 동학은 당시 서양의 학문이 조선땅에 들어와 무분별하게 팽배하자 유교, 불교, 도교등의 종교적 교리를 통합한 동학을 창도했던 것이다.
1594년 임진왜란이후 조선 사회를 이끌던 선비정신은 사라지고 벡성을 중시하던 왕도정치는 그 자취를 감추자 최제우 선생은 동학을 통해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삼정의 문란 및 외세의 간섭으로 동학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동학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동학이 세력을 얻게 되자 기존 유림층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높아져 서학, 즉 천주교를 선봉한다는 지목을 받게 되었다. 조선 조정의 서학을 탄압하면서 동학 역시 교세확장을 두려움을 느끼고 최제우 선생을 체포되고 1864년 3월 참형에 처해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이다. 만약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고 그 뜻이 제대로 전파되고 당시 조선의 사회를 변화시켜 나갔다면 우리의 역사는 또다른 변화를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보은에는 사람이 많다. 인구는 3만4천여명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감소하는데 무슨말인가 하겠지만 인구가 감소는 되고 있지만 예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장사가 안된다고 울쌍이던 속리산 상가의 모습도 예전과는 달리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관광객은 물론 사람풍경이 제법 볼만하다. 비록 거주 인구는 별로지만 유동인구가 제법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보은읍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지역역량강화 사업인 보은 문화재지킴이 소양 교육과정에는 30명 모집에 5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수강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좋은 강좌를 개설해도 사람 모집이 제일 어려웠던 점을 감안하면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수강생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중장년층의 구성원 중에는 귀촌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한 강좌인 만큼 지역민보다는 외부에서 귀촌한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만한 주제라는 점에서 강좌의 열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예전 같으면 사람이 없어 강좌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이제는 분명 달라진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은 곳곳에서 연출된다. 각종 기관에서 진행하는 문화관련 프로그램 역시 에전에는 수강생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모습은 이제 좋은 강좌라고 소문만 나면 너도나도 참여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보은문화원에서 추진하는 20여가지의 문화교실은 항상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다.
예전 밥먹고 살면서 문화적 체험은 “강건너 불구경”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시간과 여유를 찾아 공연장을 찾는 모습은 ‘보은에서 사람구경하기 어렵다’ 는 말보다는 보은에도 사람이 많다 라고 말로 바뀌는 모습을 실감한다.
동학의 창도한 최제우 선생은 분명 조선사회의 우리의 학문, 동학을 전파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동학의 창도한 최제우 선생은 3년만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2대 교주 최시형 선생에 의해 동학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고 조선의 핍박한 백성의 삶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동학농민혁명의 물결은 실패를 끝났지만 항일 독립운동의 선봉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에게는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 사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 땅을 민주국가를 자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사회로 발전하는 것이다. 보은에 사람이 많다. 보은에 사는 사람이 이제 보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속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어 보은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려고 한다. 분명 보은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으며 그 미래는 밝은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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