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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호] 2019년 06월 20일 (목) 오계자 (소설가) webmaster@boeuni.com

어릴 적 대가족이었던 우리 집은 삼시세끼 까만 무쇠 솥에 밥을 지으셨다. 감자를 찌든 고구마를 삶을 때도 그 솥이 주인공을 품었다. 그런데 항상 기다림의 시간은 어린 나를 답답하게 했다. 아궁이에 불을 끄면 다 된 것이지 왜 늘 기다리라고 하시는지 이해를 못했다. 어느 날, 장작불을 끄고도 알불이 너무 강하니까 재로 살짝 덮어주시면서 어머니는 조급해하는 나에게 뜸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쌀이 익었다고 바로 밥이 된 것이 아니고 솥에 갇혀있는 열기가 쌀알 속으로 충분히 스며들어야 제대로 밥맛이 나고 밥도 부드럽단다.” 하시며 불을 때서 끓이는 과정보다 밥이든 감자든 그 맛을 좌우하는 게 바로 뜸 들이는 거라고 하셨다. 냄새로도 알 수 있다고 하시며 밥이 끓을 때 나는 냄새보다 뜸이 들고 밥이 잦았을 때 나는 냄새가 훨씬 구수하다고 하셨다. 내가 그 냄새의 차이를 터득하는 데는 몇 년 더 성숙해진 뒤였다.   
당시는 감자나 고구마를 뜸들일 때면 얼른 먹고 싶은 마음에 젓가락 들고 부뚜막에 앉아 솥뚜껑을 두드리며 “뜸아, 뜸아 빨리 들어가거라.” 노래를 하기도 했다. 뜸이라는 어떤 것이 밥이나 감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상상했다. 그렇게 철부지 때부터 뜸 들이는 시간이 싫고 답답했던 나는 아직도 ‘뜸’에 서툴다.
명색이 작가라면서 글을 짓는데도 뜸들이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위 작가 분들이 아주 신중하게 여유를 두고 글을 쓰는 습관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해야 옳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은 머리에서만 맴돌 뿐 실천이 쉽지 않다.
이번에는 맘먹고 문예지 원고 마감일을 여유롭게 두고 탈고를 했다. 며칠 후 마감일이 되어 그 원고를 열어보니 엉성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리배치가 거슬리고 구성이 뒤바뀌었다. 아하, 뜸이 덜 들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 깨닫고 참 부끄러웠다. 뜸이란 것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바로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기다림의 시간, 여유는 숙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주제를 선택하면 바로 쓰지 말고 그 주제에 관해 탐구하고 구상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숙성된 다음 쓰기 시작하세요.”라고 문하생들에게 누차 지도하면서 자신은 건방을 뜬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내 일상에서도 뜸 들이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예가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나, 급할수록 뜸을 폭 들이라는 의미를 누가 모르나. 머리는 알지만 성급하게 뜸도 들이지 않고 날것으로 먹으려는 미숙함이지. 세상 살면서 신중해야할 일들을 수없이 많이 겪는다. 그때마다 과연 나는 뜸을 잘 들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럽다. 그렇다, 내가 늘 야무지지 못하고 허술했던 것은 바로 그 뜸 들이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왜 그리도 성급하게 설쳐댔을까.
젊은 시절 생각엔 나중에 나이 들면, 더 신중하고 모자람이 없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베풀고 더 여유롭게 사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실제 칠십대가 되고 보니 자제력은 떨어지고 말로는 욕심 없다면서 속으로는 더 움켜쥐는 할매가 되었다. 더 베풀고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베푼다는 것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옥황상제 앞에서 심판 받을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지 천사가 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도 다 내려놓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많이 가벼워지긴 했지만 아직 뜸이 덜 들었다. 아버지 말씀처럼 더 썩혀야 될 것 같다. 
아버지께서 채마밭에 퇴비를 주시면서 거름이 완전히 썩어야 독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채마에도 좋고 물론 사람에게도 해가 없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덜 썩었으면 밭에서 더 썩으면 되잖아요?” 토를 달았다. “그 썩는 과정에서 생기는 나쁜 독을 체소가 먹고, 그 체소를 네가 먹는다고 생각해봐라.” 하셨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만사 너무 서둘면 해가 되지 덕이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삶의 이치인 것을, 내가 뜸들이기에 참 인색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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