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방랑시인 바쇼의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우리 일행 다섯 명이 인천공항을 출발한 것은 지난 8월말이다.
초청해준 우에다(上田) 교수 일행이 고마쓰(小松)공항에서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지난해 여름, 거현산방에서 한일합동인문학세미나 때 만난지 꼭 1년만에, 제6회 연구회를 겸한 교류 행사다. 그러고 보니 사반세기에 걸친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고마쓰는 우리나라 동해 방향 해안에 면한 지역의 소도시다.
조신하구나/ 이름 고마쓰 부는/ 싸리 으악새(しほらしき 名や小松吹く 萩すすき) -바쇼
지명이 ‘작은 소나무’라는 뜻이니, 귀엽다고 풀고, 그 이름처럼 작은 소나무 흔드는 바람이 불어, 싸리꽃이 흩날리며 억새가 가을 소리를 낸다는 하이쿠(俳句)다.
요즘은 대만이나 중국 여행객 때문에 일본 국내선보다 국제선 항공편이 더 많단다. 호쿠리쿠는 도야마(富山)현과 이시카와(石川)현, 후쿠이(福井)현을 아우르는 지역 명칭이다.
일본 근세 17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하이쿠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는 당시 오지였던 동북 지역을 거쳐 호쿠리쿠를 제자 소라(曾良)와 함께 5개월 동안 도보 여행하고, 기행 시문집『오지의 샛길(奧の細道;오쿠노호소미치)』이라는 불후의 고전을 남겼다.
서두는 ‘세월은 백대의 과객으로 가고 오는 해도 또한 나그네다(月日は百代の過客にして行き交ふ年も又旅人なり)’ 라는 말로 시작하며, 기행문 사이사이에 하이쿠를 읊었다. 하이쿠는 5 7 5, 17음의 정형 단시로, 계절어가 들어있어야 하며, 운을 조절하는 일종의 단락어(切字;기레지)를 필요로 한다.
야마나카온천 국화는 꺽지않아 탕의 향기여(山中や 菊はたおらぬ 湯の匂) -바쇼
그가 걸었던 때를 맞추어 여행을 가기 전에, 사전 답사를 하고 보내온 상세한 일정 전반과 지도, 문학기행 자료 40여쪽을 미리 모여서 공부했다. 일본인들의 기록성은 참 대단하다.
바쇼는 선인(先人) 사이교(西行)의 와카(和歌)를 ‘불역유행(不易流行;변하지 않음과 새로움)’의 모범으로 삼고, 또 후세 시인 묵객은 바쇼가 남긴 시와 기행문의 때와 장소를 따라 걸으며 그를 추모하는 하이쿠를 짓는다. 다시 현대의 문학인들이 선인들의 족적을 지도에 그리고 사진을 담아 자세하게 해설한 책을 낸다.
개인의 기록이 모여 과거의 발자취와 생활상이 복원되고 전체 역사를 이룬다. 또한, 선인들의 발자취를 현재에 되풀이 음미하며 재생산해간다.
이웃나라 우리도 한번 해보자, 하여 걸은 길,
8.31(일)- 아침, 인천공항. 아타카 세키쇼 유적, 다다신사, 바쇼당, 가쿠센케이, 야마나카온천 '료칸 스이메이'.
9.1(월)- 젠쇼지, 요시자키고보・시오고시 소나무 유적, 게히신사, 미토열사기념관・미토텐구당 유적, 쓰루가터널온천 북국그랜드호텔(세미나).
9.2(화)- 이로노하마, 조구신사(신라종), 쓰루가시립박물관(덴구당 특별전), 에이헤이지, 송별회(고시노댁), 호텔에코노 후쿠이역전.
9.3(수)- 오전, 고마쓰공항.
고시노(越野) 교수 댁에서 송별 만찬을 대접받으며, 서로 하이쿠를 주고받았다.
우에다 교수 하이쿠,
여행도 또한 마지막 거처인가 오늘의 달아(旅もまた 終の栖か 今日の月)
한인들에게 종소리 그윽하네 조구신사여(韓人(からひと)に 鐘の音ゆかし 常宮社) -矛茨(보시)
필자의 답구,
나타데라여 바쇼 발자취 따라 싸리꽃 길을(那谷寺や 芭蕉踏みし 萩の道) -은현(恩峴)
만찬 때, 유학시절 맥주 안주로 곧잘 먹던 줄기 풋콩(枝豆;에다마메)이 반가웠고, 새로 나온 큰 캔생맥주를 딸 때는 수건을 받침으로 삼았지만 모두들 1/5쯤 거품이 터져나와 넘쳐흐르는 걸 별수 없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채소류와 사시미 회, 육류 요리, 다과가 순서대로 나왔는데, 자택 텃밭에 손수 재배한 무화과를 곁들인 샐러드 맛도 좋았다.
여행의 끝에 무화과 먹는 밤아 고시노의 집(旅の果て いちじく食う夜や 越の家)
후쿠이의 옛 지명이 에치젠(越前)으로, 여기서 월(越: 고시) 자를 따와서, ‘후쿠이현의’, ‘고시노의’ 집 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담아, 작별의 인사로 한 구 지어 보았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배웅나온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고마쓰공항을 이륙했다. (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