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면 관터(官基)에서 성실히 일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김철순 시인이 지난 12월 8일, 김세현 화가의 그림에 자신의 시를 담은 시화집 「사과의 길」을 발간했다.
지난해인 2024년 7월, 시집 「초록뱀이 있던 자리」를 출간한 지 불과 1년 6개월여만이다.
이번에 발간된 시집에 그림을 담아준 김세현 선생은 방정환 시인의 시가 담겨있는 「만년샤쓰」와 백석 선생이 쓴 「준치 가시」등 우리 그림 책사의 주요한 작품에 그림을 그린 유명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김철순 시인은 “묵묵한 땅을 닮은 시인의 눈에서 태어나. 나비처럼 자유로운 화가의 붓으로 이어지는. 동그란 동그란, 「사과의 길」,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라며 어느 날 찾아온 한 편의 시가 팔랑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화가를 이 그림책속으로 끌어드린다.
자연과 우주를 성찰하게 하는 소박한 일상의 노래를 지어 온 김철순 시인의 꾸밈없는 시상이 깊고 무한한 세계로 향하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김 시인은 김세현 화백이 그린 26점의 그림을 배경으로 자신의 시 ‘사과의 길’을 한절 한절 담아갔다.
그의 시에는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나는 얼른 그 길로 들어가요. 동그란 동그란 길을 가다 보니 연분홍 사과꽃이 피었어요. 아주 예쁜 꽃이예요. 조금 더 가다 보니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어요. 아주 작은 아기 사과예요. 해님이 내려와서 아기를 안아 주었어요. 가는 비는 살금살금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물려 주었어요.”라 쓰여있다.
“그런데 큰일이 났어요. 조금 더 가다 보니 큰 바람이 사과를 마구마구 흔들어요. 아기 사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어요. 아기 사과는 있는 힘을 다해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어요. 조금더 동그란 길을 가다 보니 큰바람도 지나고 아기 사과도 많이 자랐어요. 이제 볼이 붉은 사과가 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겼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엄마가 깎아놓은 사과는 아주 달고 맛이 있어요.”라고 사과가 꽃 피고 열매 맺고 성장해 수확되는 전 과정이 담겨있다.
시화집 ‘사과의 길’ 한쪽 한쪽을 살펴보면 그림탁, 과도가 사과의 표면을 파고들면서 사각, 사각, 동그란 모양으로 늘어지는 껍질. 동그란 모양의 그 길 위로 사과가 들어선다.
조그만 두 발로 망설임 없이 뛰어든 길 위에서 나를 이끄는 맑은 기운과 연분홍 사과꽃, 벌과 나비를 만난다. 넉넉한 해님과 사려 깊은 비가 아기 사과를 살찌우고, 시간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과는 붉게 영글어 간다.
삼합 장지에 황토와 안료로 바탕을 깔고, 먹의 깊은 검정, 호분의 단단한 백색으로 토대를 올린 뒤 선명한 구아슈로 표현한 사과의 향과 질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가장 전통적인 동양화의 재료로 가장 현재 적 모색을 펼치는 김세현 화가의 정수가 담긴 그림도 함께 펼친다.
이번에 시화집 「사과의 길」을 발간한 김철순 시인은 마로면 관기리(관터)가 고향으로 30년 전인 1995년 제1회 지용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이후, 한국일보 신춘문예, 경상일보신춘문예 등에 당선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그의 시 ‘등 굽은 나무’는 지난 2018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다. 김 시인의 작품으로는 시집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서」와 동시집 「초록 뱀이 있던 자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