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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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환상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9.06.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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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홍역예방주사가 있어서 비켜갈 수가 있지만 옛날에는 출생후 반드시 치러야하는 질병이 홍역(‘홍진’이라고도 함)이었다. 의료시설이 발달되지 않았던 그때는 홍역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가 홍역을 앓고난 후에 비로소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역을 앓기 전에는 아이가 산다고 장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홍역은 자식이 앞으로 살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고비점이었다. 그런 홍역은 아주 어린 시절에 치르는 질병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자기의 ‘홍역앓이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홍역을 겪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악몽에 몸서리를 칠 것이다. 나는 홍역을 늦게 앓았다고 어머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 기억이 난다. 바로 누워있으면 검붉은 색깔의 이상하게 생긴 도깨비들이 천정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곤 했던 기억들이 그것이다. 그때 본 도깨비들의 환상은 어떤 뚜렷한 형체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여기 번쩍 저기 번쩍하고 나타나는 것이 그저 머리가 어지럽기만 할 뿐이었다. 아주 기분 나쁘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환상이란 어떤 생각에 골몰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지만, 전연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주태배기’들이 술을 많이 마셨을 때, 그리고 마약을 상습적으로 흡입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환청’, ‘환시’현상이다. 이른바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현실이 아니지만 ‘꿈’만은 지나고 보면 신기하게도 예시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해 버릴 수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꿈’을 ‘신의 계시’로 생각하여 중요시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의 환상에 관한 것이다. 마약한자의 경우에는 그런 환상경험이 많을 것이다. 또 술도 취하면 마약을 흡입했을 때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실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우리 큰집의 장손이신 큰형님은 애주가라서 늘 술에 젖어 있었다. 수년전에 타계한 큰형님의 장녀인 질녀는 자기 어릴 때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교까지는 시골 신작로를 따라 10리나 먼길이어서 학교가 늦을 때는 무서워서 집에 올 수가 없어서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서 술자리가 파하도록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큰형님은 동네에서 대가 센 두분 중의 한분이었다. 큰형님은 늘 큰 몽둥이 하나를 들고 다니셨다. 신작로를 벗어나 동네로 들어오는 ‘게메들’ 보리밭 속과 산길, 그리고 산과 접한 늙은 느티나무가 있는 ‘청륭’에는 늑대들이 자주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큰형님이 어느 날도 술이 만취가 되어 혼자 오다가 동네입구인 ‘베나골’ 앞에서 갑자기 ‘톳제비’(도깨비)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그놈과 싸움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놈을 제압하고 ‘청륭’으로 들어오다가 그놈이 죽었는지 걱정이 되어서 다시 돌아가보니 아직도 살아있더란다. 그래서 다시 그놈과 싸워서 이기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이튿날 맨정신으로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조그만 말뚝 하나가 있었노라고 했다. 흔히 도깨비는 밤에 나타나고 새벽닭우는 소리가 나면 홀연히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아마 일본인들의 민속에서 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빗자루가 도깨비로 나타난다고 한다. 도깨비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님은 도깨비를 그 이름 ‘헛개비’라고 하는 말에서도 알 수가 있다. 도깨비를 본 것은 환상을 본 것이다. 세상에는 현실을 무시하고 도깨비 같은 환상만 쫓는 딱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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