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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물난리
[1410호] 2019년 01월 10일 (목) 홍근옥 (회인해바라기작은도서관) webmaster@boeuni.com

추운 한겨울에, 난데없이 물난리가 났다.
동네에서 올라오는 간이상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물을 졸졸 흘려놓고 일주일 집을 비운 사이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서 안심하고 수도꼭지를 잠근 채 자고 일어나니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물이 없으면 우선 화장실이 큰 문제다.
식구 수대로 하루에 예닐곱 번 드나들어야하고 한 번에 세숫대야로 세 개씩 물을 부어야하니 이건 도저히 대책이 없다.
먹고 마시는 물이야 생수항아리가 있으니 별 문제 없다 쳐도 설거지에 빨래에 머리감고 샤워하는 일 등등......
가장 기본적인 일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물 때문에 난리가 난 것이다.
 안식년에 들어간 남편은 가진 게 시간밖에 없다면서 제 손으로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여 보겠단다. 동네에서 몇 백 미터나 떨어진데다가 응달 산 밑으로 수도관이 묻혀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얼마나 얼었을지 모르면서 과연 감당이 될까 싶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켜보기로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는 있는지 수도관 관에 더 가느다란 엑셀 파이프를 밀어 넣고는 끝부분에 주방에서 쓰던 깔때기를 붙여서 뜨거운 물을 부어 넣는다. 일단 꽤 괜찮은 방법 같기는 한데, 문제는 얼음이 쉽게 녹지 않는다는 거다. 한참을 들이부어야 겨우 몇 센티씩 파이프가 들어가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이틀 동안 낑낑거리다가 포기하고는 말았다. 무모하리만치 자신감 있게 달려드는 모습과, 실패는 했어도 이틀간 잘 놀았노라 는 긍정적 태도가 봐 줄만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나도 이런 상황에 맞추어 나름대로 요령도 생기고, 뭐 이렇게 살아도 얼마간은 괜찮겠다는 여유마저 생긴다. 세수는 비누를 안 쓰고 물을 그릇에 담아서 알뜰히 쓰면 1L정도면 충분하고, 설거지는 요령껏 하면 두 바가지면 가능하다. 문제는 화장실인데 좀 춥고 귀찮기는 하지만 바깥에 만들어진 생태 화장실을 쓰니 간단하게 해결된다.
우리나라 1인당 가정 용수 사용량이 200L정도라는데, 이렇게 살아보니 10L면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그동안 미루어놓은 빨래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기야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물지게나 물동이로 퍼다 먹는 집이 대부분이었으니 불과 5-60년 전만 해도 집안에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기본이었을 터, 물난리하고 호들갑 떨어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고맙거나 귀하다는 생각 없이 지나치게 물을 낭비해온 셈이다.
물을 철철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오줌 몇 방울에도 10L의 물을 흘려버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낭비하고 있는 게 물 뿐일까? 먹는 음식이며 생각 없이 입고
버리는 옷가지들이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요상한 물건들에 별일 없이 나다니며 뿌려대는 석유, 더 나아가 나의 소중한 시간, 건강, 사랑하는 가족들, 내 유한한 삶까지도 아무생각 없이 그냥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편 속에 이런 깨달음이 숨어 있구나 하는 생각 끝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유행가 가사가 퍼뜩 떠올라 피식 웃음을 짓는다.
 도시 같으면 생기지도 않을 불편을 끔찍하게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산골마을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소중한 체험으로 생각하고 싶다.
어차피 물난리야 하루 이틀이면 해결 되겠지만 내게 가끔씩이라도 물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갈 계기가 됐다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체험코스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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