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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息影亭의 여운
[1380호] 2018년 05월 31일 (목) 오계자 (소설가) webmaster@boeuni.com

금수강산이란 말이 아주 멋지게 어울리는 봄이다.
산천에 두둥실 연두색 뭉게구름은 활엽수들의 무대요 그 이웃에 밝은 초록으로 조화를 이루는 동네는 낙엽송들이다. 검푸른 건강미로 겨울 산을 지키던 소나무 군락은 의젓한 배경이 되어준다. 4월의 마지막 날 이렇게 금수강산의 풍광을 보며 덩달아 가슴이 뛴다.
길가 풀숲이 너무 우거지기전에 소쇄원의 봄 풍광명미와 성산별곡의 산실 식영정이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설렘은 여전하다. 면앙정, 환벽당, 소쇄원 등등 많은 정자들 중 어느 한곳 마음 빼앗기지 않는 곳이 없다. 그 중에서 성산별곡의 산실 식영정에 더 관심을 둔 것은 나름 내 마음에 따라다니는 그림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며칠 공부한 머릿속의 자료들을 솔가지 사이로 보이는 광주호 수면에 펼쳐 놓고 노송에 기대어 풍류를 즐기던 옛 선비들을 상상하며 설화들을 정리해 본다.
식영정은 여러 설화가 있지만 명칭대로 모두 그림자와 관련된 이야기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듯이 ‘따라 다니는 그림자가 싫어서 헤매다가 이곳 천년 송 그늘에 오니 그림자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이름 지었다는 설이다. 지금까지는 가볍게 들어 넘겼지만 그 그림자는 바로 ‘누累’라는 것을 오늘 깊이 있게 생각해본다. 상대가 사람이든, 식물이든, 짐승이든 모든 생명에게 누를 끼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니 떨쳐버리고 싶기 마련이다. 여기서 그늘이란 당연 은거일 게다. 
보다 확실하게 다가오는 식영정의 정설은 '장자' 잡편의 '어부'(漁夫) 장(章)에서 따온 제목이라는 설이다.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가 공자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쓸데없이 바쁘게 사는가?
인(仁)을 실현하겠다고 바쁘게 뛰어 다니는 꼴이 참 안됐다. 그렇게 뛴다고 될 일 같으냐? 자신을 따라다니는 그림자(影)와 발자국(迹)은 열심히 뛸수록 더 따라붙는다. 그늘에 들어가야 그림자가 쉬고(處陰以休影), 고요한 데 머물러야만 발자국이 쉰다(處靜以息迹)' 라고 하는 대목에서 휴영(休影)과 식적(息迹)의 줄임말이 식영(息影)이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만 헐떡거려라! 이제 좀 쉬면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아라! 이게 도가의 이념이며 식영정의 속뜻이라고 본다.
조선의 선비들은 대개 젊어서는 유학으로 열정을 쏟지만 이런 저런 사유로 벼슬과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내려놓고 귀향해서 은거하면서 도가사상으로 풍유를 즐겼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石川 임억령의 사위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이런 명당에 정자를 지어 드렸나보다. 덕분에 식영정은 송강 선생님을 비롯하여 당대를 풍미한 시인묵객이 드나들며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양의 건축물은 내부시설과 외형 등 건물 자체가 중심이라면 우리의 선조들은 건물에서 바라보는 풍광을 중시했다고 한다. 여기 정자들이 다 그렇다. 식영정 주변 산세는 능선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당시 굽이굽이 흐르던 창계천은 땜 공사로 광주호가 되었지만 늙은 소나무들과 배롱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호수 또한 조화롭게 어우러진 비경 중에 비경이다. 아무도 없는 정자에 혼자 남아 하루만이라도 옛 시인묵객의 흉내를 내고 싶은 마음은 여운으로 남겨 놓고 내려오는 길 부슬비가 동행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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