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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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인생
  • 박태린 (보은전통시장 음악방송DJ, 청주 한음클라리넷
  • 승인 2018.03.2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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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래 여동생이 대전으로 여고 진학을 하면서부터 대전 출입이 잦았었는데 대전 가는 것을 좋아한 이유 중 하나는, <예그린>이란 음악실 때문이기도 했다. 집에는 변변한 음향기기가 없지만 그곳에 가면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서 들을 수 있었으니까. 서울 명동에는 <필하모니> 라는 음악감상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을 때였다.
그곳엔 DJ가 있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Rain, rain, rain, 비>의 나지막하게 깔리는 저음에 전율하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들으면서 눈물이 맺혔었다.
노래 선곡에 신경을 써야 하는 나는 종종 여러 가수들의 음악을 몇 시간씩 듣곤 하는데, 지난 주 일요일 밤엔, 발라드의 황제라 불리우는 이 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을 비롯 30곡이 담긴 앨범과, 리듬&블루스라는 흑인들의 창법인 소울을 기막히게 소화해서, 마법의 소울 가수라 불리우는 김건모의 노래들, 도깨비 드라마 OST 전 곡을 메모를 하며 두 번 이상 들었는데, 아까운 시간은 어이 이리 짧은지, 밤은 단거리 선수처럼 득달같이 달려가고 새벽은 내 앞에 서서 말간 얼굴로 하루를 재촉했다. 이문세의 노래는 부드러운 산문시 같은 느낌에 강직한 호소력, 로맨틱한 내용이 압권이지만 <알 수 없는 인생>은, 안정된 음을 유지시키기 위한 진동 (바이브레션)이 주는 호소력이 얼마나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지 노래를 듣다가 잠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의 많은 노래 중에서 가창력과 호소력에 흥겨운 멜로디까지 모두, 제대로 발휘한 곡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추 축제 때 쉼터 앞에서는, 남성 듀엣이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트윈폴리오가 부른 <웨딩케익>이 흘러나오자, 바람처럼 잰 걸음으로 달려 온 산외상회 김연상씨, 노래에 맞추어 둥실둥실 리듬을 타고 있었다. 노래 신청은 내가 했는데, 자신도 챙기지 못할 만큼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녀의 가슴속엔 아름다운 케이크 하나가 촛불을 가득 켜고 살아 있어 달려와 춤추게 한 것이다. 그날 잠시의 모습이 그토록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었던 것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맑은 표정이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부군인 시인 조원진 선생님 못지않은 섬세한 감성을 가진 그녀가 음악에 매료되어 있는 모습을 나는, 애틋한 마음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실 웨딩케이크의 내용은 이별의 슬픈 내용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사랑했는지 황당하게도, 결혼축가로 불러 달라는 부탁도 여러 번 받았다고 트윈폴리오 멤버 윤형주씨는 말했다. 비록 슬픔을 표현한 것일지라도, 그 노래를 사랑한다면 내용이 본인과 상관없어도 동화(同化)되어 버리나보다. 우연찮게 DJ가 된 덕에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협한 음악 속에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영어 노래는 안 되고 클라~식도 안 되고 7080세대가 좋아하는 노래, 뽕짝~!” 이라고, 처음 전통시장에서 방송을 할 적에 은근?히 태클을 거신 뽕짝 매니아 평안수산 김삼수 사장님. “재래시장엔 나처럼 팍 삭은 사람들이 오거든? 그러니까 요즘 노래보다는 40년대 노래를 틀면 좋아, 남인수가 부른 <애수의 소야곡> 좀 들려 줘~” 라시던 부녀회장님의 70대 오라버님. 애수의 소야곡 전주곡을 들으니 지난 해 가을, 제부가 기타로 자주 치던 노래,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트로트였다. 아~! 맞다. 전통시장에는 7080세대만 사는게 아니지. 그 이후로 하루에 이삼십분 정도 4~50년대 음악이 추가되었는데, 귀에 착 감기는 정감어린 멜로디와 코믹하고도 직설적인 가사, 지금 들어도 부족하지 않는 음악성이 뛰어난 곡들을 찾아내었다. 귀소(歸所)본능이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청음(聽音)이라고 하는데, 익숙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해 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음악이 주는 영향력은 무엇일까? 로마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으로 가는 길에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과 저승세계의 왕 히데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비파 연주였고, 종교 의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은 인간과 신을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래 전, 세계적인 음악을 좋은 음향기기를 통해 라이브처럼 듣고 싶어 애태우던 한 소녀가 지금, 밤 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 도 없이 많은 음악 속을 유영(流泳)하며 향수에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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