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정사는 지난 84년 지방유형문화재 충북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됐으며, 이곳에는 충북도 민속자료 제11호인 능성구씨 보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 유사시에 족보를 위시한 유고 등을 보관할 수 있게 했고, 석함 표면에 ‘능성구씨 보갑’이란 글씨를 음각했으며, 정사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며,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고봉사(孤峰舍)’현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봉정사의 유래는 조선 중기 김정이 학문을 연마하고 즐기던 곳에 최수성이 고봉정을 세웠으며, 이름은 김정이 삼파연류봉을 고봉이라고 하고 올라가 즐긴데서 비롯됐으며,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이후에 구수복이 은거, 학문을 연마했으나 그 뒤 정자가 낡자 구수복의 5세손인 일봉 이천이 봉우리 아래로 옮겨 지으면서 지금의 건물로 세웠다고 한다.
보은읍 성족리 출신의 김정(1486∼1521)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중종 2년(1507) 문과에 장원 급제해 병조·이조정랑 등을 거쳐 이조참판, 형조판서를 역임했고, 사림의 대표적 인물로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는데 이를 위해 미신타파, 향약의 실시 등을 추진했다.
최수성(1487∼1521)은 조선 전기 선비화가로 김굉필에게 배웠으며, 신진 사림파 학자로 조광조·김정 등과 교유했다. 구수복(1491∼1535)은 중종 5년(1510)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고, 1519년 기묘사화 후 파직됐으며, 경학에 몰두 많은 후진을 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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