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영물 … 길·흉 예시 지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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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영물 … 길·흉 예시 지혜의 상징
  • 곽주희
  • 승인 2002.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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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의 말(馬)은 행운·신성한 동물
올해는 동양 전통의 간지(干支)로 임오년(壬午年), 말띠 해다. 올해는 말(馬) 중에서도 흑말에 해당하는 해다. 말은 12지 중 일곱번째 동물로서 시간으로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방향으로는 남쪽,달로는 음력 5월을 지키는 방위신(神)이자 시간신(神)이다.

사람의 역사는 말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속설(俗說)로 보면 정월 첫 오일(午日)은 ‘상오일’,‘말날’이라 하여 말에 제사 지내고 찬을 주어 위로했다. 10월의 오일(午日)에는 팥떡을 해서 마굿간 앞에 차려놓고 말의 무병(無病)과 건강을 빌었다.

이런 민속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말을 얼마나 아껴왔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우리 문헌에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설화를 보면, 백마가 승천하면서 두고 간 큰 알 속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말은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신라고분 천마총에서도 말을 신성시한 고대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 무용총과 쌍영총에 등장하는 말은 사냥하는 고구려인의 활달한 기상을 복돋워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말은 백제가 망할 때 흉조를 예시해주는 영물로서의 역할을 한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소, 돼지, 심지어 개고기까지 먹었지만, 말고기는 즐기지 않았다. 말이 죽으면 따로 무덤까지 마련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경기도 파주 윤관장군 묘역을 비롯해 전국 여러 곳에 말무덤이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각별한 유대가 없는 띠동물이 있을까마는 민속신앙에서 차지하는 말의 상징적 의미 역시 어느 띠동물 못지 않게 크다.

말의 가장 큰 민속문화적 상징은 뭐니뭐니 해도 ‘영물’(靈物)로서의 이미지다. 고구려 주몽, 신라 혁거세 등의 신화에서도 말이 국조 탄생을 알리는 신비한 동물로 묘사되기는 마찬가지.또 백제가 멸망할 때 흉조를 예시해준 지혜로운 동물도 말이었다. 신체상의 이미지로 볼 때는 자연스럽게 박력과 생동감으로 연결된다.

예부터 말의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 탄력있는 근육, 기름진 모발, 단단한 말굽과 거친 숨소리 등은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인식돼 왔다.‘훌륭한 장수가 탄생하고 죽을 땐 어디선가 명마(名馬)도 함께 태어나고 죽는다’고 했던 옛속설도 그와 무관치 않다. 어떤 상황에서건 ‘재수없다’는 핀잔을 듣지 않는 띠동물로도 드물게 손꼽힌다.

오히려 액을 막고 행운을 부르는 덕있는 동물로 대접받은 흔적이 설화와 고대 유물에서 자주 확인된다. 고분에서 발견되는 3㎝ 크기의 말 부적. 휴대하기 쉽게만들어 옛날부터 액막이용으로 썼다는 게 학자들의 풀이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말을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다. 말은 하늘의 사자로서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강원도 산간지대에서는 말을 수호신으로 받든다. 나무를 깎거나 쇠붙이로 만든 말을 모신다. 우리가 개고기는 먹으면서도 말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국에 걸쳐 말 무덤 설화가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농촌에서는 정월 대보름 날 준 먹이 가운데, 말이 먼저 입에 대는 곡식이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단오날 정오 무렵에 벤 쑥을 대문에 걸어서 잡귀를 쫓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단오(端午)는 말 그대로 ‘양기(午)가 끝까지(端) 치솟는 날’인 데다가, 정오는 해가 하늘의 복판에 이르는 시간인 것이다.

사주 책에도 말띠에 태어난 사람을 높이 친다. 활동력이 강하고 말도 잘하며 성취욕이 높아서 무슨 일에나 앞선다고 한다. 특히 병오년(丙午年)에 태어나는 사람을 백말 띠라 하여 이러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손꼽았다. 예로부터 말띠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하다고 여겼다. 그것이 왜곡된 것이 ‘말띠 여자 팔자 세다’는 속설. 그러나 말을 상서롭게 여긴 우리 조상들의 의식에 비추어보면, 이는 그야말로 말이 안된다. 말띠 여자, 어쩌구 하는 속설은 조선시대까지 우리 역사 속의 어느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말의 해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낳지는 못할망정 이를 기피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에게 말띠 해는 격변기였다. 임오군란,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1882년), 조선어학회사건(1942년), 신라 우경법 실시(502년)는 모두가 임오년 말띠 해에 일어난 일들이다. 말띠의 성품은 대체로 바쁘게 움직이고 조숙하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큰 재미를 보고 영화를 누리게 된다. 성품은 밝고 명랑쾌활하여 표현력이 좋으며 매사에 적극적이며 부지런하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 조랑말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몽골말을 들여오면서 본격적으로 사육을 하기 시작했고 번성기에는 전체 마필수가 2만 마리를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1980년대에는 1천여 마리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조랑말이란 이름은 속명이고 공식 명칭은 ‘제주 재래마’라고 한다. 체구가 110∼120㎝, 체중은 세 살 기준으로 230㎏ 정도이다. 제주 조랑말은 원래 연자방아 돌리기나 짐수레 끌기, 밭갈기 등등에 많이 쓰였다. 윷놀이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저가(猪加) , 구가(狗加) , 우가(牛加) , 마가(馬加) , 대사(大使) 같은 부여족의 대가(大加) 에 해당하는 도. 개. 걸. 윷. 모의 모가 말이다. 모가 나면 다섯 밭을 갈 수 있고 다시 한 번 더 놀 수가 있다. 말이 돼지, 개, 양, 소, 말 다섯 짐승 가운데서 제일 빨라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다. 윷놀이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는 놀이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있다. 말이 긍정적인 뜻만 지닌 것은 아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을 ‘말귀에 동풍(馬耳東風)’이라 일컫는다.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냐?”는 보잘 것이 없는 이를 얕잡는 소리이다. 또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말 살에 쇠 살’이라 비꼰다. 간사한 속셈이 드러났을 때 “마각(馬脚)이 드러났다” 이르고, 좁고 긴 얼굴을 말상이라 하여 꺼린다.‘말 갈데 소 간다’는 속담이 있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 가서는 안될 곳까지 따라간다는 뜻이다. 투자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해야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말만 듣고 뇌동매매를 하지 말라는 조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말똥도 모르고 마의(馬醫) 노릇한다’는 속담은 자신도 주식에 대해 잘 모르면서 옆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다.‘말 태우고 버선 깁는다’는 장가보내려고 말에 태워놓고 그제서야 신랑의 버선을 깁는다는 뜻으로 준비성이 없음을 꾸짖는 말이다. 대세가 상승하네 어쩌네 한다고 해서 사전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주식에 돈을 질러대다간 이런 꼴이 되기 십상이다. 조금 재미를 봤다고 점점 투자액을 늘려가는 사람에게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제격이다. 한없이 욕심을 내다가는 낙마(落馬)를 하는 수가 있다.

외국에서는‘달리는 말에 채찍질하여 더 빨리 달리게 한다’는 주마가편이라는 속담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면 말을 죽이기 쉽다는 훈계성 속담만 많다. ‘달리는 말을 채찍질해서 죽이지 말라’는 ‘Spur not a willing horse to death’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말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꿈의 해몽이다. 신년에 말꿈을 꾸신 분들은 참고하면 된다.

▲말에게 물린 꿈= 어떤 일의 주도권을 잡거나 출세해 세상에 이름을 날린다.

▲말 안장이 없는 꿈= 일을 추진하거나 여행을 떠날 일이 생긴다.

▲처녀가 말을 타고 있는 꿈= 추진하고 있는 일이 성사된다.

▲조상이 집으로 말을 끌고 온 꿈= 집안에 사람이 오거나 재물이 생긴다.

▲말이 자기에게 달려오는 꿈= 급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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