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은 그렇게 첫눈과 함께 겨울이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아직은 겨울 외투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햇살은 따사롭지만 바람만은 이미 겨울 바람인 듯 하다.
춥다. 찬바람이 불어서 춥고 추수가 끝난 들녘이 휑해서 춥고 농한기를 맞는 농민들의 주머니가 왠지 두둑하지 못한 것 같아서 더 춥다.
그래도 올 겨울 소계리 주민들은 가막재 마을에 있는 경로당에 모여 밥도 해먹고 두런두런 담소도 나누며 훈훈한 겨울을 보낼 것이다. 지금은 문이 잠겨 있었지만 조금 있으면 주민들이 와서 지낼 수 있도록 경로당을 개방할 거라고 한다.
보일러가 돌아가고 써늘한 방안에 온기가 가득하면 그곳에선 밥 짓는 냄새가 풍기리라.
기름 값도 걱정이고 혼자 사는 노인들은 끼니 챙기는 일도 걱정인데, 언 몸도 녹이고 방금 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는 경로당이 있다는 건 시골 사람들에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개구리는 지금쯤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을까?
농민들은 아직 일손을 놓을 때가 아닌가 보다.
소계리를 찾은 날은 입동이 지난 다음날이었다. 전날 내린 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들로 향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경운기로 밭을 가는 아저씨, 삼삼오오 모여 비닐 씌운 밭에 마늘을 놓는 아주머니들, 그들에게 이 정도 추위쯤은 전혀 문제될 게 없는 듯 보였다.
논에는 묶지 않은 볏짚이 그대로 있는 곳도 있었다. 남들보다 벼를 늦게 베서인가, 볏짚이 채 마르지 않아 묶지도 못하고 들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몇 일 전에 내린 비와 입동 날 내린 눈 때문에 거의 말라 곧 들일 수 있었던 볏짚도 찬바람 속에 어쩔 수 없이 논 신세를 지고 있었다.
추위가 한 뼘만 고개를 숙이고 따뜻한 햇살이 조금만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그 사이 얼른 볏짚이 마르고, 농민들이 다 못한 일거리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기분 좋게 겨울을 맞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될 수 있길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소계리 마을 봉사자로는 이대인(52) 이장과 박찬용(75) 노인회장, 양상현(47) 새마을 지도자, 안효춘(58) 부녀회장이 있다.
#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소계리
보은 옥천간 37번 국도 옆에 위치한 소계리는 50호 정도가 사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수도작 위주에 고추, 담배 그리고 오이, 호박 같은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는 물론 5가구의 한우 사육 농가도 있다. 논이 34㏊ 밭이22㏊로 논은 경지정리가 잘된 수리 안전답과 수리 불안전답이 반반 정도의 비율이라고 한다.
소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수한 초등학교가 있는 말꼬지 마을 앞 저편에는 홍고리보라고 불리는 보가 있다. 소계리 주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홍고리보의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이것에 관해 홈거리보가 변하여 홍고리보가 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었다.
홍고리보는 예전에 했던 대로 돌을 쌓아 물길을 막았었으나 80년 수해 이후 그것이 무너져 시멘트로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옛날에는 새터말과 쇠메기에서 수한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가막재를 돌아가면 길이 먼 탓에 홍보리보로 질러 다녔다고 한다. 책보를 허리에 묶거나 가방을 멘 아이들이 돌로 쌓아 올린 홍보리보를 건너 다닐 당시 그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는 어떤 이야기꽃이 피었을까, 문득 궁금함이 일었다.
보은군 지명지에는 소계리의 지형이 소의 목에 해당한다하여 쇠메기 또는 우항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소계리는 말꼬지, 가막재, 새터말, 쇠메기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보은에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소계리 첫 번째 마을인 말꼬지에는 수한 초등학교가 있다. 동정 초등학교(수한면 동정리) 폐교 후 대부분의 수한면 학생들이 수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소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17호가 살고 있으며 가든과 휴게소, 수한 자율방범대 초소가 있다.
말꼬지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고개 하나를 넘으면 10호의 농가와 경로당이 있는 두 번째 마을인 가막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국도에서 마을이 자리한 오른편으로 질신, 장선 등을 잇는 농어촌 도로가 연결돼 있는 곳이다.
4,5년 전 개설된 이 도로는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도 하는 반면 위험 요소도 안고 있다. 같은 수한면 지역인 성리에 석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작업을 할 때면 대형 덤프 차량의 통행이 지나치게 많아 경운기를 몰고 들에 다니기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방지턱과 안전 장치 마련 등을 요구했으나 예산 등의 이유로 아직은 실행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한다.
7호가 살고 있는 새터말과 12호가 생활하는 쇠메기는 가막재 마을을 지나 농어촌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소계리의 마지막 마을은 ‘소의 목에 해당한다’는 쇠메기이다.
# 주민 모두가 가까운 이웃사촌
마을이 하나하나 멀리 떨어져 있어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이긴 힘들지 않을까. 또 단합은 잘 될지 궁금했다.
이대인 이장은 주민간 화합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밭에서 마늘을 놓던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이 가막재 앞 서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저 안쪽에 새터와 쇠메기 마을이 있는데 나한테는 좀 멀거라고 했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다른 아주머니가 한 마디 툭 던진다. “그게 멀긴 뭐가 멀어”
이대인 이장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소계리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고개 너머에 살건, 걸어서 한참인 곳에 살건 그들은 모두 가까운 이웃 사촌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들에게는 그 길이 가깝게 보일 것이다.
소계리 청년회원들은 일년에 한번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관광을 다녀온다고 한다.
모든 경비를 청년회 기금에서 충당하며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할 정도로 회원들간에 단합도 잘 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씨까지 넉넉하다.
올해는 주민들과 함께 부산을 갔다왔다고 했다.
청년회원들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 10여 명, 외지에 나가 있는 회원이 20명 이상으로 외지에서 생활하는 회원들도 마을에 애사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잘 참여한다고 한다.
소계리는 2004년 (주)우성정밀과 농촌사랑 1사 1촌 자매결연을 맺었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우성정밀의 대표 김문희씨가 바로 소계리 출신이라는 것이다. 그의 부친(김재학, 67)은 현재 말꼬지에 살고 있다.
자매 결연 이후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매하는 등 우성정밀은 농촌사랑과 더불어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서로의 노력 없이는 도농간 교류가 지속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나 이들의 관계가 협력하는 사이로 꾸준히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언젠가 취재를 갔던 마을을 지나친 적이 있다.
뭔가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을 더듬던 중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마을에는 낡고 오래된 2층 건물의 구 마을회관이 있었다.
주민들은 건물을 헐고 그곳에 아담한 공원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랬다. 낡은 건물은 온데 간데 없고 바로 그 자리에 커다란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나무 주변에는 의자도 놓이고 예쁜 울타리도 생길 것이다.
참으로 반가웠다. 주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숙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흐르는 시간은 변하는 무언가를 통해 흔적을 남긴다.
이담에 소계리를 지나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주민들이 바라던 것이었으면 좋겠고 주민들이 기쁨을 누리는데 한몫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수한면 소계리는 보은에서 옥천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변에 있는 마을이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말꼬지와 가막재를 유심히 눈 여겨 볼 것 같다. 그리고 멀리서나마 새터말과 쇠메기의 모습도 그려볼 것이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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