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한면 성리)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나는 비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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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성리)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나는 비리마을
  • 보은신문
  • 승인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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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이 한차례 농민들의 허리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집집마다 전화벨이 울린다. 도시에 사는 자식이며 친척들이 걱정스런 마음에 걸어보는 안부 전화다.

들녘에 나가보면 농작물들이 제자리를 잃고 쓰려져 있다. 힘없이 땅에 떨어진 과일들이 꼭 자신들의 신세인 것 같아 농부는 쳐다보기조차 싫다.
사람들은 싸우면 화해를 하고, 섭섭한 것이 있으면 가슴에 묻기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위협적인 자연재해 앞에서 농민들이 복받치는 설움과 분노와 아픔을 이와 같은 맘으로 이겨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농촌은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하면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지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농민들이 오늘날까지 땅을 지키며 살아 온 것도 참 용하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잔잔해지자 농민들이 다시 들녘으로 발길을 옮긴다.
피해 복구작업으로 그들의 손길이 바쁘다.

성리를 찾은 날은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빗줄기가 몇 차례 더 지나간 뒤였다.

맑게 갠 하늘 아래 마을은 다소 평화로워 보였다.

보은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가다보면 산모퉁이를 돌면서 우측으로 성리마을 입구가 나온다. 동네 입구인 아랫 비리에서 본 마을까지는 굽이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 이 정도 왔으면 마을이 나올 법도 한데 성리마을은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을 진입로가 폭이 좁고 포장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주민들이 왕래하는데 불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마을에 도착해 성리 주민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원래 성리마을은 비리마을로 불려진다. 사방이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밤에는 별만 보인다 해서 별리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비리가 되었으며 별 성자를 따서 성리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성리를 비리라고 더 많이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아랫말, 중간말, 웃말로 자연마을이 나뉘어져 있었으나 중간말은 현재 마을이 없어졌다고 한다.

성리는 주위가 온통 산으로 덮여 있다. 그 중 인근 마을인 수한면 광촌리와의 경계에 있는 거멍산은 산이 높아 검게 보여 거멍산이라 했다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거멍산을 비단 금(錦)과 구름 운(雲)을 딴 금운산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기는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47호 70여 명이 생활하는 성리마을 봉사자로는 주진홍(51) 이장과 유현수(75) 노인회장, 전무희(48) 새마을 지도자, 방상순(64) 부녀회장이 있다.

# 몇 백년이 넘은 소나무 마을 지켜
성리에는 수령이 몇 백 년이 넘었다는 소나무가 마을 앞 언덕에 서서 여름날의 푸르름을 더해준다. 마치 마을의 상징처럼 늠름한 기세를 풍기고 있다.

이 소나무 외에 마을 뒷산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더 있었으나 몇 년 전 폭설로 인해 가지가 부러지는 등 피해를 입어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을 앞 소나무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소나무 특유의 수형을 자랑하고, 마을 전체가 이 소나무를 바라보듯이 가옥이 형성돼 있다.

오래된 수령답게 범상치 않은 수세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그네를 뛰며 놀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도 병충해 없이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을에 기쁜 일이 되고 있다.

외부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늘 볼 수 있는 한 그루 소나무는 만나면 이것저것 할 얘기가 많아지는 친구같이 다정다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활 속에서 항상 보아왔기 때문일까, 이웃처럼 친근하다.

취재를 위해 담배를 딴다던 유현수 노인회장을 밭으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마을 주민과 노인회장의 부인은 뒷산에 있었던 소나무 두 그루가 그렇게 예뻤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성리에서 본 소나무는 평범하고 자랑할 것 없다는 시골 마을에 자부심으로 서 있었다.

# 산골이어도 남부럽지 않다
성리는 경사지이긴 해도 산아래 농경지가 많고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밭작물로는 담배(5호), 옥수수(5호), 오이(5호), 호박, 고추 등이 있으며 소규모 이상으로 많이 경작하는 옥수수 같은 경우 출하를 끝낸 뒤 다시 콩을 심어 거두는 이모작을 한다고 한다.

취재를 간 날 한 농가(전상선, 65)에서는 놉을 얻어 담배를 따고 건조작업장에서 담배를 엮는 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축산 농가로는 양돈 1호, 한우3호로 한우는 평균 30마리를 사육한다고 한다.

성리는 산골이고 교통도 불편하고 마을 규모도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경제 수준이 다른 마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성리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시장출하를 목적으로 채소 등을 재배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은 양을 생산한다. 마을 앞 뿐 아니라 마을 뒤로도 많은 농경지가 있으며 나름대로 생산성 있는 작물을 선택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골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뒤쳐지지 않고 나름대로 부지런히 일하며 생활하고 있는 성리마을 주민들.

부인과 함께 오이 출하 작업을 하고 있던 전무희 새마을 지도자는 “처음에는 가격이 좋았는데 지금은 조금 내려갔다”고 했다.

아직도 출하할 오이가 많다고 한다. 가격이 더 이상 내려가는 일 없이 계속 좋은 가격에 내다 팔 수 있길 바란다.

# 바른 성품, 주민 화합
유현수 노인회장의 집 외벽에는 ‘성리협동회’란 현판이 걸려 있다.

그것이 뭐냐고 묻자, 예전에 마을에 50호, 350여 명 정도가 살 때 주민들은 서로간 화합과 마을 발전을 도모하고자 협동회를 결성하고 조합도 운영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만 보더라도 마을일에 적극적인 주민들의 단합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지나간 옛날 일이라 이제는 필요가 없을지 몰라도 '성리협동회' 현판은 마을의 한 역사를 담고 있다.

성리는 3, 4년 간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된 적도 있다고 한다.

성리마을 숙원 사업은 마을 진입로 포장이다.

마을 뒤로는 교암과 광촌을 잇는 2차선 도로가 보기 좋게 잘 닦여 있다. 그곳을 보면 예산 부족으로 실행되지 못한 허술한 마을 진입로 포장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마을 앞을 흐르는 조그만 하천에는 갈대가 많이 서식해 물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하상폭이 해마다 30㎝정도 덮인다고 한다.

갈대 제거 등 하천을 재정비할 필요성을 낳고 있다.

왜 별이 많이 보여 비리마을이라 했는지,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그것은 자연히 알 게 된다.

산으로 둘러싸여 골이 깊고 우묵해 밤에는 별만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다.
마을은 별빛을 닮아서인지 아담하고 호감이 가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곳곳에 대규모 축사며 갖가지 농작물 등 주민들의 생활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설이나 농경지가 한 눈에 들어와 마을을 탐방하는데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다.

들녘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은 성리 주민들은 굉장히 부지런해야겠구나였다.

이 나라의 농부 치고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성리 주민들은 특히 더 부지런 할 것 같다.

담배며 고추, 채소 등 어느 하나 쉬운 농사가 없다. 일을 하다가 잠시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이 늘 곁에 있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성리에도 후텁지근한 날씨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김춘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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