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의 결재를 받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부속실을 들락날락했다. 보다 못한 한 공무원은 각자의 책상에 신호등 같은 신호기를 설치해 놓고 차례가 되면 부속실 직원이 스위치를 누르면 해당자 책상에 있는 신호기에 불이 들어와 결재를 받으러 가면 시간 낭비도 줄어들 것이라며 이런 아이디어까지 내놓기도 했다.
물론 실행되지 않았지만 결재에 걸리는 어려움이 이해되는 단면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전자 결재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굳이 군수나 부 군수를 찾지 않고 결재 창에 결재를 받아야 하는 자료를 올려놓으면 결재를 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도 공직사회는 직접 군수와 부 군수를 대면해서 결재를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결재문서를 들고 부속실을 찾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실제 기안을 한 공무원들보다는 상급자가 많다. 즉 6급 또는 5급 과장들이 부군수실이나 군수실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사나 과장에게는 기안자가 결재를 받으면서 군수나 부 군수에게는 기안자가 아닌 주사나 과장이 받는 것을 결코 윗사람에 대한 높임이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전자결재가 일반화 된데다 군수의 수(手) 결재도 상급자가 받으니까 실제 하급직원들이 군수 또는 부 군수와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방법이 지속되면 사실상 하급 직원들이야 군수의 이름과 군수의 얼굴을 알겠지만 신임군수는 하급 직원들의 얼굴은 커녕 이름을 알기도 어렵다.
아마도 4년 임기 내에 아는 직원 보다 모르는 직원이 더 많을 수 있다.
시내에서 보행하던 중 군수와 하급직원이 서로 마주쳐 하급자가 군수에게 인사를 하더라도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할까 속으로 생각하며 “누구시더라” 하고 물을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얼마나 슬픈 상황인가.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될 것이다. 군정이 빛이 나려면 군수를 보좌하는 공무원들이 잘해야 한다. 공무원들이 군을 위해, 군민을 위해 복무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군민들이 선택한 군수의 의중을 꿰뚫어 업무를 수행해 군 발전을 배가시키는 것도 공무원들의 큰 역할이다.
보은군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인 공무원들을, 하급 직원들을 군수는 당연히 잘 다독이면서 독려하고, 칭찬해 그들이 업무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업을 기안한 사람이 그 사업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재권자에게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고 또 결재권자를 이해시킬 수 있으며 결재권자가 ‘노’를 할 때 ‘예스’할 수 있게 설득시킬 수 있다.
결재는 사업을 확정짓는다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업을 추진한 당사자들의 노고에 대한 이해와 함께 내가 당신의 고생을 이해한다고 인정(認定)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일반적인 업무, 아주 평이한 업무가 아닌 중요한 업무, 까다로운 업무에 대해 군수의 격려의 말 한마디는 담당자가 더욱 힘을 내서 업무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군수가 사업 추진의 어려움을, 어렵게 일한 나의 고생을 이해해준다는 것은 천군만마 못지 않게 힘이 되는 것이다.
사실 행정 경력 2, 30년 이상 된 고참 주사나 30년이 넘는 5급 사무관들은 능구렁이가 몇 마리가 들어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중 사무관으로 승진하려고 하는 고참 주사들이나 소위 중요 부서라고 하는 부서의 장으로 가려는 사무관들은 군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전시하기 위해 군수실을 노크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공무원들은 군수를 ‘우리 회사의 사장’이라고도 하지만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많을 정도로 군수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크다.
신임 군수가 직원들의 얼굴이나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마주 대면해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시간까지는 그래도 기안자가 결재를 받는 것이 군수를 아버지라고 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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