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천우신조라고 했나요?”
상태바
“누가 천우신조라고 했나요?”
  • 송진선
  • 승인 2005.05.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로소여 김윤기씨, 200여평 우사 전소, 어미소 11마리 불에 타죽고 40여마리 화상
“절약, 또 절약, 알뜰살뜰하게 살림하고 밤을 낮처럼 일해서 모은 돈으로 일군 재산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구요, 누가 그랬죠?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지난 26일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축사가 전소하고 여물을 먹었던 멀쩡했던 어미소가 불에 타 죽는 등 화재로 삶의 희망까지 잃은 마로면 소여리의 김윤기(51)씨의 망연자실한 심정이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 스파크가 축사 안의 짚더미로 튀며 축사는 손을 쓸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였고 한가로이 여물을 먹던 한우 70여마리가 화마와 싸우고 있었다.

미처 축사를 빠져 나오지 못한 어미소 11마리는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열기를 입으로 뿜어내듯 입을 벌리고 열기를 피해 이리저리 피하다 여기 저기에 부딪혀서인지 온몸이 상처투성이 인 채로 죽어 있었다.

눈망울이 크고 쌍꺼풀의 선한 눈을 가진 소들의 죽은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머지 소들은 어떨까. 겨우 불길 속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미 화염이 폐 속 깊숙이 들어간 소하며, 불에 데여 화상을 입고 털이 모두 까맣게 타버린 것 등 온전한 소들이 거의 없었다.

축사가 전소하고 짚이 다 타버리고 사료가 다 타버리고 소가 타 죽었고 또 살아있는 소도 피해를 입었으니 어림잡아도 천문학적인 숫자의 피해액이 나온다.

김윤기씨는 땅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그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김윤기씨의 그동안의 고생을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 아니 마로면 사람들, 그리고 마로 한우회 회원들은 안타까워하며 수습에 나서면서도 애처로운 마음에 함께 착잡해 했다.

마로면 소여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할 때 아무것도 없이 남의 집 사랑채로 분가해 화전을 일구며 신혼을 보냈다.

부부가 밤을 낮처럼 열심히 일하고 옷도 안 사입고 먹을 것도 덜 먹으면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렸다.

김윤기씨는 농사만으로는 몫 돈을 만지기가 어렵자 인생 막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광부 생활도 10년간 하고 광부를 그만두고는 혼자 상경해 건설 현장에 취업해 일당을 받는 노동자 생활도 3년간 하면서 몫 돈을 쥐었다.

집에 남은 부인은 혼자 농사를 지으며 남편이 버는 돈을 불렸고 차츰 고생을 마감할 정도로 재산을 일궜다.

아무것도 없이 분가해 몫 돈을 쥔 김윤기씨는 건설 노무자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90년 본격적으로 한우사육을 시작했다.

논과 밭도 1500평 정도 구입하고 한우 입식자금도 받지 않고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소를 구입, 축사를 짓는데도 빚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마을 사람들은 보기 드물게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고 전하면서 동네에서는 그냥 누구네 아버지이지만 밖에서는 그래도 사장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살림은 윤택해졌어도 절약이 몸에 밴 이들은 사육규모를 늘리기 위해 올해 2월 400평 규모의 축사를 지었다. 6월 중 준공을 할 계획이었는데 그 새를 못참고 화재가 난 것이다.

김윤기씨와 이웃에서 살고 있다는 한 주민은 부부가 정말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이라며 자수성가한 사람인데 결과가 이렇게 되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마로 한우회(회장 윤태억) 회원들도 하나같이 나서서 경황이 없는 김윤기씨를 안정시키고 화마에서 건진 한우를 관리하는 등 동지애를 보여줬다.

그리고 김윤기씨가 어떻게든 이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로 한우회에서도 적극 돕겠다고 윤태억 한우회장은 말했다.

잿더미로 변한 생활터전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김윤기씨는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자꾸 쓰러지는 부인을 다독이며 재기를 다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