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을수·이종락씨 빈소 표정
“내년 3월 결혼식 올린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12월달에 내 집으로 이사한다고 좋아했는데…”
지난 18일 발생한 한화 보은공장 폭발사고로 숨진 고 이종락(36, 보은 교사)씨와 조을수(27, 보은 풍취 마루뜰)씨의 가족들은 망연자실했다. 더욱이 사망한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애사심이 강하고 성실했으며 심성이 착해 회사는 물론 동료들도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7인치 로켓탄두의 자탄이 터져 파편으로 몸이 일그러지고 불에 그을려 시신을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어느 정도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들에게 보여줬으나 이를 본 가족들은 참혹함에 말을 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3남4녀 중 막내로 4살 때 엄마를 잃고 시집간 큰 누나 밑에서 자랐던 조을수씨를 잃은 형제들은 화학 분석실에 근무해야 할 을수가 본래의 작업장이 아닌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 이런 변을 당한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
사고 후 곧바로 연락을 받지 못하고 오후 6시가 넘어 언론 보도와 지인들을 통해 사고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회사에 전화연락을 취했으나 이미 통화 불능상태였다는 것. 사망소식을 모른 채 남편은 회사갔다고 말한 부인은 정신을 놓았고 젖먹이 딸에게 젖을 물릴 힘조차얻지 못했다.
회사측으로부터 사망 소식을 들은 것은 7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청주병원에 안치된 것이 7시45분경으로 기록, 그동안 가족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고 시신을 사고현장에 방치했던 것 아니냐며 울분을 더했다. 더욱이 가족들의 시신확인은 당연한 것인데도 오후 8시에 보여주겠다, 12시에 보여주겠다고 지체시키다 새벽 4시에 보여줬다며 한화에서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질책했다.
고 조을수씨는 2년전 아버지까지 작고하고 외롭게 지내다 하용순씨를 만나 슬하에 딸 혜원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이미 웨딩촬영까지 마치고 내년 3월에는 결혼식을 올린다고 형제들과 신혼여행, 예식장 잡는 것을 상의한 조을수씨는 살기불편한 풍취리 집을 동화속에 나오는 집처럼 고쳐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살았다.
딸 100일을 맞아 지난 8일 청주에 있는 형에게 놀러가 비디오카메라까지 빌려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조을수씨는 17일 둘째형에게 전화를 걸어 비디오테잎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29일 3형제가 모이자는 전화를 한 것이 형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목소리가 됐다.
인천공장 이전문제로 논란이 많자 형들에게 인천공장 이전은 회사의 장기 계획에 의한 것이고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같은 얘기를 해줄 것을 부탁해 형들도 홍보 맨이 되게 했던 그였다. 동네에서 어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거들어 주고 음료수라도 사다가 주는 등 인정이 참 많았던 을수씨가 친아버지처럼 잘 따랐던 시형 아버지(박용기씨)가 결혼 선물로 대형 냉장고를 선물했을 정도.
그런 동생을 잃은 형들은 “왜 보은 사람들이 인천공장 입주를 막고 보은공장까지도 나가라고 하는지 알았다” 며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강화해 줄 것”을 회사측에 당부했다. 진천이 고향인 고 이종락씨를 잃은 가족들은 지난 97년, 98년 두차례 폭발사고를 경험하고 나오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상의를 했지만 IMF 때여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데 참고 다니라고 말했던 것에 가슴을 쳤다.
졸지에 아들과 남편을 잃은 그의 어머니와 부인은 몇차례 실신을 해서 응급실 신세를 지고 정신이 들면 다시 아들과 남편을 찾아 울부짖었다. 처음 창원공장에서 보은공장이 가동하면서 보은으로 이동, 모범 직원이었던 이종락씨는 이번 사고 때에도 다른 사람이 하던 것을 자기가 했다가 변을 당했다며 책임감이 강하고 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는 동료들의 얘기에 가족들은 가슴을 쓰러 내렸다.
부인 이명숙씨는 남편과 함께 알뜰살뜰 근검절약하면서 대동아파트를 마련해 오는 12월이면 내집으로 이사간다고 너무 좋아했는데 남의 집만 전전하다 내 집에서는 한 번도 살지못하고 갔다며 원통해 했다. 지난해 수술을 해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를 돕는 등 부부간의 정도 매우 애틋했던 이종락씨 슬하의 10살과 7살인 아들들은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는 지난 9일 안부전화를 하면서 돼지고기를 삶을 때 된장을 넣는 것이냐를 물었는데 이것이 종락이의 마지막 목소리였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의 형은 매년 형제들이 부모님이 계시는 진천 집에 모여서 김장을 담그고 나눠서 가지고 가는데 이번주 일요일인 22일 그 일을 하기로 해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주말을 기다렸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3남1녀 중 차남이었던 이종락씨는 형의 학업을 위해 자신은 고등학교도 포기하고 직업훈련 학교에 들어가 용접, 다듬질, 지게차 등의 자격증을 취득한 만능 기능 보유자가 돼서 한국화약에 입사, 올해로 18년차다.
애사심이 누구보다도 강해 가족들에게 한화계열사였을 당시 경향신문구독을 권유했을 정도이고 인천에 있는 형에게 한화 야구경기가 인천에서 열리면 응원을 가라고 했을 정도. 가족들은 기반잡고 살만하니까 이런 일을 당했다며 화약 전문 회사에서 이런 사고가 난다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며 다시는 재발이 되지 않도록 회사에서 사고 방지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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