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티(bubble tea)가 유행하고 있다. 요즘 스타벅스에서 가장 많이 찾는 메뉴의 하나라고 한다. 마시기 편하고 가볍게 요기도 된다고 해서다. 중국에서 개발된 차로 음료와 차 종류(홍차, 녹차, 우롱차 등)에 우유나 식물성 밀크, 시럽이나 설탕 등 감미료를 섞어서 만든 밀크티 부류다. 여기에 빠짐없이 타피오카 펄이 들어간다. 누구나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데, 타피오카 펄에 우유, 커피, 차, 설탕을 음용자의 입맛에 맞게 잘 섞으면 된다. 펄(pearl)은 믹서기를 돌려서 잘게 부순 내용물을 말한다.
이 버블티의 주성분인 타피오카는 감자와 고구마의 중간쯤 되는 작물을 1차 가공한 것이다. 맛으로는 고구마 쪽에 조금 더 가깝다. 필자가 드나들던 인도네시아 한 대학의 열대작물연구소에 문의하였더니, 이 나라에는 100종류가 넘는 식용 구근(球根)작물이 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감자와 고구마와 싱꽁(singkong)을 꼽았다. 감자 고구마는 우리 것과 비슷하다. 다만 고구마는 표피가 다양한 색깔이라는 것이 다르다. 감자는 꽤 비싼 편이고, 그다음 순서가 고구마인데 웬만한 밭에서 다 잘 자란다. 싱꽁은 고구마보다 훨씬 더 흔하고 값도 싸다. 싱꽁은 쟈바 원주민 브따위족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그래서 이들이 모여 사는 서부 쟈바를 중심으로 싱꽁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져 있다. 중부와 동부에서는 각각 싱꽁 이외에도 뗄로와 뽀훙이라는 별개의 명칭이 있다. 수마트라 쪽에서는 우비 까유(ubi kayu)라고 하는데, ‘나무뿌리에 달린 고구마’라는 뜻이다. 이 싱꽁 또는 우비 까유는 양질의 전분(澱粉)을 담뿍 안고 있는데,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타피오카(tapioca)라는 상품으로 수출품목 대열에 끼어 있다. 우리나라 소주의 원료다. 영어로 카사바라는 구근식물이 바로 이것인데, 브라질이 원산지다. 그곳에서는 이를 만디오카라 하여 옛날부터 ‘인디언의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싱꽁은 개나리나 미루나무처럼 꺾꽂이해서 키운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심어도 잘 자란다. 비가 많이 오면 더 좋고 적게 와도 크게 상관없다. 기름진 토양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험한 산지도 마다하지 않는다. 토양이 척박하고 강수량이 적어 벼농사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싱꽁을 많이 재배한다. 싱꽁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현대식 타피오카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벌써 오래전에 동티모르의 상록수부대를 찾아가는 길가의 삭막한 초지에도 곳곳에 싱꽁 재배단지가 눈에 띄였다.
쟈바에서는 싱꽁을 30센티 정도로 잘라서 꺾꽂이한다. 6개월가량 지나면 키가 1미터 넘게 자라고 줄기 굵기는 2센티가량 되는데, 이때가 되면 싱꽁을 수확한다. 큰 고구마와 같은 굵기에 길이는 두 배쯤 되는 싱꽁이 한 그루에 많게는 5-7개 정도, 적어도 3-5개 정도가 달려 나온다. 표피는 잘 벗겨진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빻으면 쉽게 달걀색 가루를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고급 소주 원료인 타피오카다.
싱꽁은 서민들의 중요한 양식이다. 우선 쪄내면, 삶은 고구마와 감자처럼 대용식이 된다. 한국인들의 입에 고구마는 달고 감자는 씹는 맛이 퍽퍽하다. 그러나 싱꽁은 감자와 고구마의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약간 쌉스레 한 맛이 있어서 어른들 입에는 오히려 잘 맞는다. 맛도 그만하다. 소금을 찍으면, 한 끼니가 됨직한 표준형 싱꽁 한 개쯤 먹는데 도움이 된다.
싱꽁을 무채로 썰어서 양념을 하고 소금 간을 해서 식용유에 볶아내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아주까리처럼 잎사귀도 먹는다. 갓 캐낸 싱꽁을 갈아 설탕을 조금 넣고 쪄낸 후, 손으로 꼭꼭 눌러 적당한 크기로 잘라 야자 속살을 긁어 떡고물처럼 뿌리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된다. 어른들은 싱꽁밥을 즐겨 먹는다. 타피오카 양의 20%쯤 쌀을 섞어 조리한 것이다. 이 싱꽁밥은 대개 풋고추로 만든 반찬과 먹는데, 반찬이 없어도 먹을 만하다. 싱꽁밥을 적당량 떼어 내어 손끝으로 꼭꼭 쥐어서 먹으면 ‘쫀득쫀득’하여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먹거리가 된다. 몇 해 전에 충북 농업기술원에서 아열대 작물인 카사바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벌써 많은 진전이 있어서 노지 재배가 가능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새로운 먹거리 확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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