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압장비업계 선봉장 대한중공업 황규관 대표 
'틸트기술' 국산화로 한국유압장비업계 발전의 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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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압장비업계 선봉장 대한중공업 황규관 대표 
'틸트기술' 국산화로 한국유압장비업계 발전의 선봉
  • 나기홍 기자
  • 승인 2023.08.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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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건설기계 및 부품 및 어태치먼트 업계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수출 격감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황에 빠져있는 가운데에서도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내수 및 수출시장을 적극개척하고 불황의 파고를 정면 돌파하며 성장에 성공한 기업이 있다.
 바로, 보은군 속리산면이 고향인 한국유압장비업계의 선봉장 황규관(63) 대한중공업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황규관 대표가 경영하는 (유)대한중공업은 중장비에 부착해 사용하는 회전링크, 틸트로테이터, 틸트링크, 코끼리집게, 딱따구리, 호랑이집게, 회전돌집게, 회전나무집게, 돌집게, 회전바가지집게, 지게차포크 등 각종 굴착기와 결부된 최첨단기계를 생산하는 한국유압장비업계의  선두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황규관 대한중공업 대표이사.
황규관 대한중공업 대표이사.

특허출원 및 신상품개발 및 특허출원으로 건설기계업 선도
황 대표가 (유)대한중공업을 설립한 것은 26년 전인 1997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 36세에 불과했다.
 회사설립과 동시 굴삭기용 링크생산에 돌입한 대한중공업은 불과 1년후인 1998년, 대한건설 기계 안전 관리원으로부터 우수 링크에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스톤그랩, 지게차포크, 우드그랩, 리뻐 등 6종의 굴삭기용 어태치먼트 개발에 성공했다.
 황 대표는 각종 굴삭기 어태치먼트 개발팀을 신설하고 다양한 연구와 개발에 매진했으며 이는 주효해 2007년에는 6종의 굴삭기 어태치먼트 그랩 특허출원에 성공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정부에서도 인정해 그해에 ISO 9001 환경경영 시스템과 ISO 9001 품질경영 시스템을 인증했다.
 성장을 지속해온 (유)대한중공업은 같은 해인 2007년 현재의 본사가 소재한 대덕테크노밸리에 신사옥을 마련해 이전했다.
 어태치먼트 개발팀의 노력은 주효해 2009년 2월에는 유럽통합인증마크인 CE인증 취득은 물론 벤처기업인증도 획득했다.
 세계시장으로 시야를 확대한 황 대표는 2012년 ‘대한중공업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세계시장을 향한 제품개발에 나섰으며 이 결과 6종의 특허실용신안과 7종의 디자인상표등록에 성공하며 이노비즈 기업인증은 물론 수출유망 중소기업에 선정은 물론 2015년에는 100만불의 수출탑을 쌓는데 성공했다.
 황 대표의 대한중공업은 성장을 지속해 연간 매출규모는 연간 120억원으로 증가했고 사원도 35명으로 늘어났다.
 신사옥의 필요성을 느꼈던 황 대표는 2017년 현재의 자리에 신사옥을 준공하고 본사를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황규관 대표가 이끄는 (유)대한중공업을 비롯한 대한민국 건설기계 및 부품 및 어태치먼트 업계는 2020년 상반기 동안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 따라 수출 격감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황에 빠졌다. 
 황 대표는 이런 위기 속에서도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내수 및 수출시장을 적극 개척해 불황의 파고를 정면 돌파에 성공했다.
특히 (유)대한중공업은 국내외에서 신제품 공개 및 마케팅을 온라인으로 대신하는 한편 유튜브 등의 SNS 채널을 활용해 자사의 창의적인 회전틸트 및 회전틸트링크 알리기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황 대표의 지속되는 연구와 노력으로 2022년말 기준 (유)대한중공업의 총 자산은 400억원을 넘어섰고 56명의 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연매출 300억원에 이르는 중소기업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한중공업 전경.
대한중공업 전경.
대한중공업 출품 제품들.
대한중공업 출품 제품들.

 IMF고통속 아이템 개발로 전화위복(轉禍爲福) 
 황규관 대표도 IMF의 고통을 겪었다.
 창업 이후 급격히 성장하던 황 대표의 대한중공업도 불과 1년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서느라 눈물을 흘리며 커다란 고통이 겪어야만 했다. 눈물을 삼키며 가족같이 지내온 직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통속에 동종업계나 후발업계의 견제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경쟁, 후발업체이 노이즈마케팅은 마음에 상처를 안기며 의지를 빼앗기도 했다. 눈에 띄게 성장하는 대한중공업을 지켜보는 경쟁업계에서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그때 마다 황 대표는 두주먹을 불끈 쥐고 업무에 더욱 매진했고 신상품 개발과 연구에 몰입했다.
 황 대표는 “모든 사업가가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26년간 사업을 이끌어 오면서 위기를 느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IMF) 당시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의 해결을 위해 끊임없는 연구 개발과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위해 밤을 지샌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로 개발해 생산한 제품이 막상 현장에서는 조립이 안되거나 가동이 안 될 때가 빈번했고 그 때마다 황 대표는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시제품앞에서 밤을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은 지속됐고 그 결과 우리나라 건설기계 및 부품 및 어태치먼트 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선 대한중공업의 오늘을 있게 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성공의 비결... 고향 보은 발전에 기여할 계획  
 이처럼 기업운영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황규관 대표가 지난 5월 20일 속리산면 수정초 운동장에 나타났다. 이 자리는 속리중학교총동문회 정기총회 및 단합대회 자리로 동문인 황 대표의 고향이 보은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황 대표의 고향마을은 속리산면 북암리로 1960년 부친 고 황흥성씨와 모친 고 우점순여사와의 사이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수정초, 속리중을 졸업하고 취업 일선에 뛰어든 황 대표는 바쁜 직장 생활속에서도 방송통신고와 우송대(전 중경산업대)에서 학력신장에도 매진했다.
 1979년부터 산업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황 대표는 40여년의 세월 동안 온갖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한국유압장비업계의 선두주자 대한중공업 대표로 우뚝 서는 데 성공했다.
 황 대표는 “한번 시작한 일, 아무리 어려운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며 “적절한 때가 되면 작으나마 고향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 실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황 대표의 가족으로는 부인 유은순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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