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와 장마 
상태바
무더위와 장마 
  • 최동철
  • 승인 2023.07.20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80>

 우리나라 여름철의 특징은 무더위와 장마다. 사춘기 시절 주인공과 공감되어 설렘을 느끼게 했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도 여름날의 슬픈 이야기다. 고속도로를 둘러싸고 요즘 시끌벅적한 양평군에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있다. 매일 3회 인공 소나기가 내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관람객을 주변 원두막이나 수숫단으로 피신하게 한다. 소낙비에는 낭만이 있다.

 하지만 장마 속 장대비는 다르다. 특히 1980년 7월 보은군 대홍수를 경험했던 이들에겐 두려움이다. 당시 302mm의 집중호우로 장속저수지 둑이 터져 순식간에 읍 주변은 물바다가 됐다. 173명이 사망했고, 17,645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장마는 보은군민에겐 트라우마다.

 무더위 역시 여름에 누구나 겪어야 할 자연이 주는 시련 중 하나다. 다소 힘겹더라도 적응하며 견뎌내야 자연과 동화된다. 허나 요즘은 실내든, 차량이든 에어컨에서 찬바람 나오고, 선풍기 바람을 쐰다. 그러다보니 적응력이 떨어져 감기 몸살 배앓이 등 냉방병에 시달린다. 

 각설하고, 한반도의 역사를 뒤바꾼 고려 말 1392년의 한 여름날 군사쿠데타도 ‘날씨가 너무 덥다’는 게 명분이었다. 당시, 원나라를 쫓아낸 명나라는 “원나라가 관장했던 철령 이북은 모두 요동에 귀속시킨다”며 고려 서북면인 함남 안변 이북 지역의 땅을 모두 내놓으라고 했다.

 이에 반발한 우왕과 문화시중 최영은 백관의 의견을 모아 요동정벌군을 편성했다. 최영은 총사령관인 팔도도통사, 좌군도통사는 조민수, 우군도통사는 이성계가 맡았다. 직전에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들어 요동정벌을 반대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여름에 군사를 출동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무덥고 비가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풀어지고 대군이 전염병에 걸릴 것이니 옳지 않다. 온 나라가 멀리 정벌을 하면 왜적이 빈틈을 타 침입할 것이니 옳지 않다.’

 하지만 요동정벌은 그대로 진행됐다. 요동정벌군은 압록강 중간에 있는 섬, 위화도에 진을 쳤다. 그리곤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 계속 회군만을 요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위화도를 빠져나와 개경을 향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는 단초가 됐다.

 승승장구하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1815년 최후의 패배도 더위가 작용했다. 영국, 프로이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연합군과 워털루에서 벌였던 전투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극심한 더위와 건조한 환경은 원정 프랑스 군에게 탈수와 피로도가 누적되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극심한 혹서와 혹한의 기상 조건을 겪어야 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1943) 동안 무더위와 빗물에 의한 진창길은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독일군의 보급선에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장마가 끝나면 남은 건 무더위뿐이다. 중복인 내일 복달임하여 더위를 이겨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