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음식 먹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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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음식 먹는 날
  • 최동철
  • 승인 2023.04.0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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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불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지 않고 찬 음식 그대로 먹는 날, 한식(寒食)이다. 동지로부터 꼬박 105일째 되는 날이다. 요즘이야 흐지부지하지만 예전에는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 하나였다.

 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 왕조는 이 날 종묘와 왕족의 무덤에 제향했다. 민간에서는 술·과일·포·식혜·떡·적 등의 음식으로 조상에 제사지냈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이 날엔 성묘도 하고, 봉분을 개수하며 묘 주위에 관상수를 심기도 한다.

 한식은 중국 춘추시대, 패업을 이룬 다섯 제후 중 두 번째로 꼽히는 진(晉)나라 문공이 제정했다고 알려진다. 즉, 한식의 애당초 근원은 협곡과 가파른 절벽으로 천하 절경을 연출하는  산시성 면산에 있는 개자추(介子推)의 무덤에서 비롯된다.

 맹자가 “무력으로 천하를 호령한 왕”이라 평가하는 진나라 문공이 패업을 이루기전엔 19년 동안 이웃나라를 떠돌아야 했던 죽기 살기의 도망자 신세였다. 친부이자 왕인 헌공이 후비 여희의 농간에 빠져 환관 발제와 군사들을 보내 죽이려 했다. 왕권 다툼이었다.

 그의 나이 43살부터 시작된 망명 생활은 헌공이 죽은 55살 즈음에서도 새로이 왕권을 잡은 친동생 혜공에게서 또 도망쳐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금이 바닥났다. 밥도 못 먹는 초췌한 행렬이 됐다. 62살에 진(秦)목공의 도움으로 환국하여 군주가 될 때까지 그러했다. 

 문공의 방랑 초기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추종신하 중 개자추는 고사성어 할고봉군(割股奉君)의 어원을 만든 충신이다. 먹을 게 없어 스러진 주군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국을 끓여 먹임으로서 기사회생시켰다. 

 여하튼 이러저러한 풍파를 견뎌내고 진나라 24대 군주가 된 문공은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충신 일행에게 논공행상을 통해 상을 베풀었다. 헌데 개자추의 이름은 그만 깜박 잊고 빠뜨렸다. 주변에서는 논공행상이 잘못되었음을 간언하라며 개자추를 부추겼다. 

 하지만 개자추는 “공을 바란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할 덕망을 지닌 그를 위해 자발적으로 소임을 다한 것일 뿐”이라며 노모와 함께 면산 깊은 계곡으로 칩거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문공이 잘못을 깨닫고 개자추를 쫓아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불이 나면 노모를 지키기 위해 면산에서 내려올 줄 알고 불을 놓았다. 3일 밤낮 불에 탔으나 끝내 개자추와 노모는 하산하지 않았다. 상심한 문공은 모자를 추도하는 마음에서 면산을 개자추의 성을 딴 개산(介山)으로 개명하고 그가 불에 타 죽은 날을 한식절로 정했다.

 이 날만큼은 불 피우지 말고 찬 음식 먹으며 잘못된 행동들을 반성해 보자는 의미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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