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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트림과 보리방구
[1423호] 2019년 04월 18일 (목)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webmaster@boeuni.com

 내 어린 시절에는 쌀은 아주 귀했고 주식은 보리밥이었다. 엄마가 솥에다 밥을 할 때에는 솥 바닥에는 식구들이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거무스레한 보리쌀을 깔고 그 한 가운데 부분에 별도로 귀한 쌀 한 홉(주먹) 정도를 올려놓고 불을 때서 밥을 지으셨다. 아궁이에 불 때는 것을 거들다 보면 솥에서 김이 새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러면 밥이 다되어간다는 신호라고 했다. 밥이 다 될 무렵에는 참기름을 바른 김을 불에 구워서 정성스레 아버지의 개다리 상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뜸이 들어 밥이 다되면 솥뚜껑을 열고 김이 확 올라오는 솥안을 후후 불면서 안이 보이게 하고 밥을 푸셨다. 먼저 가운데 있는 쌀밥을 아버지 밥그릇에 떠서 상에 올려놓고, 몇 숫갈 남아있는 쌀밥은 나머지 보리밥과 두루 섞어서 식구들의 밥그릇에 차례로 담으셨다. 쌀 한알도 섞이지 않은 깡보리밥은 어머님의 차지였다. 밥 먹을 때 우리들은 아버지 밥상에 놓인 쌀밥과 고소한 김이 먹고 싶어 가까이 가서 보채면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몇장 집어서 주시곤 했다.

 그때는 애들이나 어른이나 모두 쌀밥을 좋아하고 보리밥은 싫어했다. 그 보리밥을 먹으면 소화가 너무 잘되어서 금방 꺼져버리고 배가 고팠다. 방구도 자주 나왔다. 이른바 ‘보리방구시대’라고 할 수 있는 때의 이야기다. 그때 사람들은 뭘 먹으면 배가 잘 꺼지지 않을까? 하는 기막힌 궁리도 하곤 했다. 찰떡을 먹고 물을 먹지 않으면 배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들도 했는데... 그런데 찰떡은 참 맛있는 음식이고 역시 귀하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오늘날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에서의 고생담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5.16이전 ‘보리고개시대’를 보는 것 같아 실감이 났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들의 지난 시대를 살고 있는지 배가 꺼지지 않는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리밥을 먹으면 방구가 자주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어쩌면 그렇게나 시원스럽게 방구가 방! 방! 자주 나오던지! 그래서 동무들과 우스개소리로 “보리방구, 조심스럽게 뀌어라. 보리밥풀 튀어나오면서 똥싼다!”고 하면서 방구쟁이를 놀려대기도 했다. 아무것이나 먹는 대로 배가 꺼지면서 이윽고 맑고 시원한 방귀가 방방 나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소화 이야기가 나오니 무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때는 밥 이외에 배를 채울 수 있는 먹을거리는 무였다. 그래서 생무를 많이 깎아 먹었다. 달고 시원한 무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것 역시 먹으면 소화가 잘되어서 바로 트림이 나왔다. 어른들은 “생무 먹고 트림하지 않으면 인삼녹용을 먹은 것이나 진배없는 보약”이라면서 트림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무 먹고 트림을 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려운 일임을 말하기 위해서 어른들이 지어낸 말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병들이 창궐하고 있다. 위암, 위하수, 위궤양 들이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병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목적과는 달리 ‘금식처방’이라는 민간요법까지 나와서 병원에서 못 고치는 암을 고쳤다는 사람들이 많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지금은 보리밥을 별미로 찾는 배부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보리밥 먹고 보리방귀 뀌고 생무 먹고 무트림하던 그때는 우리 부모님들이 살던 눈물의 시대였다.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나서 먹을 것 없고 설상가상으로 북한 인민군들의 남침으로 발생한 6.25사변 시에도 죽을 고생들을 하시면서 억새풀 같은 삶으로 우리들을 키우셨다. 그리고 좀 살만 할 때가 되니 당신들의 할 일은 끝났다고 하시며 황급히 다른 세상으로 가버리셨다. 그 부모님들을 다시 뵈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아있는 것은 아득한 추억뿐. 소중한 부모님들의 그 고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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