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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근옥 (회인해바라기작은도서관)
  • 승인 2019.04.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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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한 이른 봄, 그러나 막 올라오는 봄나물을 만나기에는 요즘이 제격이다. 냉이는 이미 뿌리가 억세어지고 꽃을 피울 정도로 커 버렸으니 시기를 놓친 셈 쳐도 쌉싸름한 맛이 딱 먹기 좋은 씀바귀, 갓난아이 손바닥처럼 귀여운 머위, 향긋한 달래, 막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땅 두릅...... 작은 텃밭과 밭둑, 그리고 뒷산 어귀까지 잠시만 살펴보면 먹을  거리가 지천이다. 시골 생활 중 가장 바쁘고 행복한 계절, 봄나물들의 축제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 녀석들과 봄 인사를 나누며 채취하고 적당히 남겨두는 일, 그리고 머릿속에 나물 지도를 그린 다음 채취 날짜를 메모해 놓는 일정도, 두고두고 알뜰히 먹기 위한 나름의 요령이다.
 그런데 지도도 메모도 전혀 필요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 아무 곳에나 잘 자라고 아무리 뜯어도 없어지지 않고, 거기에다가 뛰어난 맛과 향기와 쓰임과 효능까지 가진 그야말로 마법과도 같은 신비의 나물, 바로 쑥이다. 단군신화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근한 쑥, 먹을거리와 약이 귀하던 옛날뿐 아니라 요즘에도 그 쓰임새가 놀랍도록 다양하다. 우선 요즘처럼 어린 쑥은 된장찌개에 넣거나 콩가루를 버무려 쑥국을 끓여 먹을 수 있다. 보들보들하고 향이 강하지 않아서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 된장만 풀어도 훌륭한 찌개와 국이 된다. 쌀가루에 슬쩍슬쩍 뒤집어 찜 솥에 찌면 향긋한 쑥버무리, 추억의 간식거리가 훌륭하다. 봄이 깊어지면서 쑥들이 더 자라면 억세고 향이 강해지는데 이럴 때는 쑥의 새순 부분만 잘라서 쑥 개떡을 찌거나 방앗간에서 쑥절편으로 만들면 된다. 중불에 몇 번 덕어 주거나 아주 어린 쑥은 그냥 그늘에서 바짝 말리면 쑥차로 변신해서 일 년 내내 마실 수도 있다. 이렇게 쑥으로 부릴 수 있는 요술만도 여러 가지, 거기에 내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쑥뜸을 뜨고 있으니 쑥만큼 고맙고 소중한 게 없다. 그런데 그 고맙고 소중한 쑥이 그냥 온 천지에 널려 있으니 이거야말로 노다지, 요즘 말로 하면 대박사건이다.
 그런데 이런 대박사건이 쑥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로 소중하고 쓰임새 많은 것들은 대부분 흔하고 값이 싸거나 공짜로 얻을 수 있다. 없으면 아예 생명이 존재 할 수 없는 햇살, 시원한 바람, 깨끗한 물(물론 요즘은 이걸 위해서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은 흔하다 못해 누구에게나 거저 주어지는 기본사양이고, 다음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쌀과 부식과 기본 연료들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정말 귀하고 비싼 것들, 예를 들어서 금덩어리나 다이아몬드나, 좋은 자동차나 새로 나온 가전제품들은 가만히 따지고 보면 없어도 살아가는데 별로 지장이 없는 것들, 그야말로 사치품에 불과하다. 결국 흔한 것이 소중한 것이고 귀한 것이 하찮은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국어사전에는 ‘귀하다’가 ‘드물다’와 ‘소중하다’는 뜻을 함께 지닌 것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수긍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늪실도 흔하고 소중한 것들이 지천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밭둑에서는 두릅, 땅 두릅, 옻순이 차례로 머리를 내밀 참이고 조금 더 기다리면 맛있는 차로 덖을 수 있는 고욤잎이 예약중이다. 뒷산에는 취나물과 고사리와 고비나물이, 그리고 내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홑잎나물에 가을에는 송이버섯까지 준비되어있다. 온갖 잡버섯과 밭둑에 자라는 들나물들은 아예 셀 수 없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난다. 잠시의 수고로 끓여 낸 향긋한 쑥국을 남편과 함께 먹으면서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흔하고 소중한 축제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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