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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번개와 감자
[1395호] 2018년 09월 20일 (목) 오계자 소설가 webmaster@boeuni.com

유래 없이 난폭한 태풍이 온다는 예보에 주변 잡도리를 단단히 하면서 가족들에게 안전 점검도 철저히 하라는 메시지도 발송했다. 문인협회 행사도 취소 연락을 받았고 개인 스케줄도 취소했다. 씨름 선수가 상대와 맞붙기 전에 기 싸움부터 하듯 잔뜩 벼름벼름 벼르고 있었지만 태풍은 아주 싱겁게 지나고 말았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도 재미가 없었는지 물 폭탄놀이라도 해서 맛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안심하고 텃밭에 가을 상추며 아욱 등 씨앗을 뿌리고 배추는 모종으로 사다가 심어 놓았다. 동살이 번지면 애잇머리로 귀요미들 싹을 틔웠나? 창밖을 살피곤 하다가 파릇파릇 예쁘게 머리를 내민 날 천둥과 번개를 몰고 온 폭우가 무섭게 난리 법석이다. 불안, 불안해서 보일러 스위치 켜려고 보던 책을 막 덮는 중에 마당에서 번쩍하고 불기둥이 서더니 동시에 콰당 짜르르 지둥 치는 소리에 어찌나 놀랐는지 펄쩍뛰면서도 내 몸은 자동 로봇처럼 보일러 스위치를 켰다.  
나는 해마다 천둥소리만 나면 불 지피는 아궁이가 없으니 대신 기름 태우는 연기라도 굴뚝으로 올려 보내려고 한다. 동시에 습관처럼 어머니의 피 감자가 생각난다. 어릴 적 어머니는 꼭 오늘 같은 날이면 미처 껍질 벗길 새도 없이 급하게 씻은 감자를 까만 솥에 넣고 소금을 뿌리고는 불을 지피셨다. 마른 나무를 두고도 연기가 많이 나는 잘 안타는 나무를 골라 지피는 것이 이상해서 눈물을 닦으면서 여쭤 본 적이 있다. 어머니의 대답은 부러 연기 많이 피운다고 하신다.
“여자 구름끼리 맞대거나 남자 구름끼리 맞닥뜨리면 저렇게 싸워서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거든 그래서 연기를 피워 올리면 끼리끼리 만나는 그 구름 새에 연기가 들어가서 싸움을 말려 준단다.” 하셨다. 일거삼득이었다. 눅지근한 방을 보송보송하게 습기를 말려 주고, 구름들의 싸움을 말려서 벼락도 예방해 주는가 하면, 짭조름한 피 감자 먹는 재미가 그 중에서 으뜸이었다. 그 후 나는 여름비만 오면 천둥소리를 기다리는 어린이가 되었다. 감자 찌는 솥에서 올라오는 김과 냄새는 참으로 어린 나를 행복하게 했다. 뜸이 들어야 된다고 기다리라는 어머니 당부를 알면서도 한손에는 젓가락을 쥐고 한손은 솥뚜껑을 열기 위해 행주를 들고 조금씩 조끔씩 솥뚜껑을 밀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들키면, 화상으로 팔과 얼굴에 흉터가 심한 뒷동네 점순이처럼 된다고 놀라곤 하셨다. 그땐 뜸 들이는 시간조차 어찌나 지루한지 빈 젓가락만 수없이 빨았다. 지금 생각하면 솥뚜껑을 밀지 말고 당겼어야 하는 걸, 어머니 말씀처럼 내가 참 위험한 짓을 많이 한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왜 그리도 호기심 많고 겁이 없었는지 위험한 짓을 할 때는 꼭 어른들의 주의 말씀을 대뇌면서 했다. 초등 1학년 때는 나무위에서 뛰어 내리다가 부러진 나무 꼭지에 발이 찔려 상처가 아물다가 덧나다가 1년을 고생 한 적도 있다. 그 때도 발에 물 들어가면 인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주의 사항과 어머니의 걱정을 명심하면서도 여름 장마 철 물을 피하지 못했다. 호기심과 모험을 좋아하다가 다친 적도 많았는데 그 습성이 대물림 된 것일까 아들이 비슷한 행동으로 다친 적이 많다. 너더댓 살 즈음이다. 커다란 보자기를 망토처럼 걸치고 600만 불의 사나이라고 2.5m 높이의 국기 게양대 버팀대에 올라가서 뛰어내린 게다. TV에서 보는 600만 불의 사나이처럼 등에 걸친 보자기 망토가 휘날리며 공중을 나는 상상을 한 것 같다. 얼굴이며 팔은 물론 피범벅이 되어서 들어왔다. 그나마 겉만 다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호기심을 너무 억제 하지 않으려고 신경 쓴 것이 이렇게 황당할 때도 있었다. 엄마의 만만찮은 성격 탓이겠지만 후회는 않는다. 싸우고 코피를 흘리며 들어와도 울지만 않으면 혼내지 않았다. 누구랑 왜 싸웠느냐 묻지도 않았다. 허나 울면서 들어오는 행위는 매를 들었다. 그렇게 내 아이들에게는 독한 엄마였다. 어릴 적 별나던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별난 엄마가 된 게다.   
그리고 육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천둥소리만 나면 보일러 스위치에 손이 가는 습관은 버리지 못한다. 여전히 피 감자는 전기 압력솥 품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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