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과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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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과 어머니
  • 박태린
  • 승인 2018.02.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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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그럽다... 라고, 힘든 일을 겪으실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말씀 하셨는데, 이번 추위는 제게도 정말 징그럽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징글징글~ 했어요.
듣기에도 생소한 북극진동에 우랄블로킹이라는 현상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2012년 12월에도 45년만의 혹한이었다고 하는데 그때보다 더 심한 추위가 찾아와 힘들게 하네요. 삼한사온이란 기후도 이젠 세월과 함께 역사책에서나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 매섭던 추위도 잦아들고 명절이 돌아오니, 설 보름 전부터 시장을 들락날락 하시면서 차례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생선, 과일을 구입하시고 다음엔 나물과 전거리 고기 등등, 그리고 명절 전날엔 가래떡을 뽑으러 방앗간에 가셔서 줄을 서시면 어머니 곁에 앉아 불평 없이 기다리곤 했어요. 지금은 눈이나 비가와도 가림막이 있어 괜찮지만 예전엔 노천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후덜덜~ ㅠㅠ 지금도 전통시장에는 고객들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가게 앞을 느릿느릿 걸으면서 물건을 고르고, 좀 비싸다 싶으면 흥정도 하고, 그러다 가게 주인이 인심을 써서 한 줌씩 덤도 얹어 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마음이 흡족해지지요. 그런 와중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정만큼은 여전하더군요. 그렇게 온기 어린 모습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부지런히 생필품을 고르시면서 오랫만에 만난 이웃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어머니가 시장 한 켠 어딘가엔 아직도 계실 것 같은 착각이 불쑥 들기도 합니다.
가끔 들르는 총각들이 운영하는 생선가게에서는 어느 날, 고르지도 않은 고등어를 잘 손질해서 소금까지 솔솔 뿌려 내밀더군요. 구입목록에 없다고 하니, 서비스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서양에도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라는 말이 있던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객이라고 이렇게 불쑥 마음이 담긴 덤이 따라 오니 제 마음도 덩달아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이쁜 아가씨 있으면 배필로 소개시켜 주고 싶어~! 라는 기특한 생각까지 솟아 나더라구요.ㅎ~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라는 책도 있던데, 예기치 않은 친절을 받으면 생각지 않았던 마음까지 일게 하는 것은 같은 이치지요?
또한 모든 가게에서는 따뜻한 차 까지 준비해 놓아 먼 곳에서 장보러 나온 분들에게 쉼터역할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보은의 많은 소식들까지 부지런히 왔다리 갔다리~♬ 
이 또한 <입소문마케팅>의 한 부분 아니겠어요?
명절 중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설 명절은 가장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날인데, 설빔으로 얻어 입는 새 옷도 그러하지만 머니머니? 해도 일 년에 한 번, 큰 용돈을 당당하게 챙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옛날에는 동네 마을 일가 어른들을 모두 찾아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았지요. 어른들께서는 일 년 내내 새겨야 할 덕담도 내려 주시고 맛난 음식도 먹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알록달록 예쁜 복주머니에는 평소에 가질 수 없던 많은 돈이 들어 있으니 얼마나 뿌듯했겠어요?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금전이 주는 위력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나이도 한 살 더 먹고 용돈도 생기니, 이만하면 어린이들에게 일 년을 간절하게 기다리게 할 만큼 매력적인 <해피설날> 이란 표현은 정말 딱~! 인 것 같아요.^~^
이제는 한 살 더 먹는다는게 지지리 궁상처럼 재미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지난 세월동안 쌓인 많은 추억들 중 전통시장에 대한 부분만은, 생각할수록 새록새록 그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네요. 살림밑천이라는 맏딸인 어린 제 손을 잡고 시장을 찾으시던 어머니는 이미 먼 나라로 떠나셨지만, 생이 다하는 날까지 <전통시장과 어머니>는 제 가슴 깊은 곳에 넉넉한 풍경으로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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